2012년 1월 26일 목요일

2012년이 끝나는 날에

나무야 명절은 잘 보냈니? 깡통은 하는 일 없이 명절이 지나가 버렸어. 그래서 조금은 아쉬워.

깡통이 사는 집 근처에 낮은 산이 있단다. 처음 이사를 해서는 산이 가까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산에 오르는 일이 많지 않더라. 마음은 자주 올라가자, 몸은 그냥 있자 결국 마음과 몸이 따로 놀다가 산에 오르는 것은 포기하게 되더라. 그런데 이 번 명절 연휴에 가족들과 산에 올랐어.

산에 가자는 깡통의 아내 말에 다들 그러자고 했어. 그런데 막상 산에 가려고 집을 나서니 생각보다 춥더라.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저 아 춥다. 오늘 정말 춥네. 이런 말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어른들은 따뜻한 방이 그리웠고, 오직 깡통의 첫째 딸 하경이만 신이 났지.

외삼촌과 아빠 사이에서 나름 열심히 걷던 하람이는 다리가 아픈지 조금씩 속도가 늦어지고, 천천히 걷고 싶은 엄마를 끌고서 하경이는 저 만치 앞에서 걷다가 뛰다가 하며 산을 향해 나아갔어. 산에 오르는 동안 조금씩 춥다는 생각이 사라졌고, 산에서 내려올 때는 가족 모두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단다. 처음 산을 향해 내 딛던 발걸음과 산에서 집으로 향할 때의 발걸음의 무게가 달랐어. 기분도 좋았고.

나무야. 살다보면 처음 출발이 망설여지는 일들을 만나기도 할 거야. 때로는 시작은 했는데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경우도 생길 거고.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옛 어른들은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을 하셨단다. 왜 그런 말씀들을 하셨을까? 그건 아마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뒤로 미루고 피해봐야 시간만 흘러갈 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해.

벌써 2012년도 한 달이 지나가고 있어. 나무는 시간이 느리게 지나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은 소리도 없이 제 갈 길을 가지. 깡통은 평생 20살이 안 될 줄 알았는데 그 20살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 버렸단다.

나무야. 산을 내려오다 나무의 그루터기에 새겨진 나이테를 보고는 어디서 들었는지 하경이가 이건 나무 나이를 말하는 거라며 나이테의 의미를 말하더군.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몸에 새겨 둔 나이테를 보면 그 나무의 성장 환경을 추정할 수 있다고들 하지.

나이테를 생각하니 깡통이 얼마 전 읽은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방승양 번역)에서 히로나카가 인용한 버섯 이야기가 떠오르네. 버섯이 어려움 없다면 뿌리만 자라지만, 어려움을 겪게 되면 둥근 버섯 모양이 된다는 이야기였어.

성경에는 이런 말도 있어.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쉬운 성경 로마서 5장 3절, 4절).

나무야. 어려움은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란다. 삶을 살다보면 어려움은 늘 가까이 있고,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어려움이 우리가 삶을 포기하게는 못한단다. 포기는 김장할 때만 쓰자는 말도 있잖아.

나무야. 우리 생각을 머리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보자. 그래서 2012년이라는 모험의 세계가 다 지나가는 날 정말 힘들었지만 진짜 재미있었다고 말해보자. 깡통은 2012년에는 집 근처 산을 자주 오를 생각이란다. 그리고 언젠 가 폭풍이 심하게 불던 해 쓰러진 나무들을 잘라 쌓아 놓은 것들을 가지고 나무 십자가도 만들어 볼 생각이야. 너를 위한 기도도 할 거고.

나무야. 편지 또 할게 그때까지 안녕.

나무와 함께 2012년이라는 모험의 세계로 발을 내 딛고 있는 깡통이 2012년 1월 26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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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0일 금요일

우리 잘 살아보자

이른 시간 일어나 이것저것 뒤적이다 글을 쓴다.

요즘 힘들지 나무는 또 다른 누군가의 슬픔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상이 힘들 거야. 나무보다 나이가 많은 나도 힘들어 하니 너는 더 많이 힘들겠지. 많은 친구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 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무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나무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너도 많이 힘들겠구나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어 미안하다.

하지만 나무야 나는 네가 숲을 이뤘으면 좋겠어.

그 숲이 산과 들의 숲이든, 아니면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원 안의 나무들로 만들어진 숲이든 산짐승, 들짐승이 살 수 있는 그런 숲이었으면 좋겠어. 누구가의 인위적인 손놀림으로 잘리고 꺾어지더라도 뿌리째 뽑혀 다른 곳으로 옮겨지더라도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뤄나갔으면 좋겠어.

내가 나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나무야 네가 학교에 다니던, 아니면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 있던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누군가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면 좋겠어.

어쩌면 한가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무가 가끔은 책도 읽고, 시도 써보면 좋겠어. 시라는 것이 뭐 별건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면 씨발 씨발 정말 정말 너무 너무 힘들다라고 쓰면 그게 네 마음이고 그게 시가 아닐까?

나무야 나는 네가 좋다. 아주 많이 좋아. 나 말고도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더 이상 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주위를 돌아보렴. 그리고 힘이 들면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해봐. 왜 망설이고 있는 거야?

나는 네 나이테가 하나 둘 늘어 가면 좋겠어.

나이테가 하나 둘 늘어갈 때마다 조금 씩 성장해 가는 네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놀라겠지만 네 자신도 많이 놀라게 될 거야. 옛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잖아. 죽을 마음만 가지면 못 할 것이 없다. 그러니 네가 힘들어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오늘은 네게 너무 부담스러운 말을 많이 한 것 같네. 사실 오늘 뉴스를 검색하다가 나무에게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를 쓰고 있거든.

우리 잘 살아보자.

잘 산다는 것이 별건가.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나는 나무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무 네가 잘 자라 숲을 이루면 그곳에 나무가 원하지 않아도 짐승들은 그곳에 살아갈 테니까. 그러니 우리 잘 살아보자. 나무는 나무가 있는 곳에서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그렇게 잘 살아보자. 나무야 너를 위해 기도할게, 또 언제 네게 편지를 쓸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나무야 안녕.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하나인 깡통이 2012년 1월 20일 조금은 이른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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