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7일 월요일

2019년 산학교 장터에 올러오세요

부천시에 있는 산학교에서 2019년 6월 8일(토) 웃음꽃 장터가 열립니다.

다들 놀러오세요 시간은 11시 30분 ~ 16시까지입니다.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선물

여러 일로 마음이 좋지 않은 아내.

둘째 하람이가 아내를 위해 아이클레이로 선물(케익)을

2019년 5월 24일 금요일

2019년 5월 23일

안녕하세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 공동대표 이광흠입니다.

시간은 벌써 5월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날도 더워지네요. 다들 날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시죠?

열린사회구로시민회는 5.18 관련 역사 특강을 잘 마쳤습니다. 운영위원들은 남서 여성환경연대 더초록의 조미순 대표님을 초대손님으로 모시고 5월 대화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토요일 그러니까 5월 25일에는 창덕궁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1시에 매표소 앞에서 모이고, 참가비는 식비 포함 2만원입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010-8812-7428로 문자주세요

이 글은 5월 23일 회원들에게 보낸 전체 문자입니다.

참, 참가 신청은 구글 https://forms.gle/gDSBYfi9YnXsjGgJ6 로도 받습니다.

2019년 5월 19일 일요일

5.18 광주 교도소 습격 사건

5.18 당시 광주 교도소 습격사건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셔서 뉴스타파 자료 하나 퍼 옮깁니다.

사람은 늘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하나 퍼왔습니다.

2019년 5월 18일 토요일

자격없는 목회자 이광흠.

지난 5월 16일 입력되지 않은 전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이광흠 목사님이시죠?
누구세요?

저 명환이 엄마예요.
아. 정말 오랜만이네요.

목사님 한 번 만나 뵈면 하는데요.
아. 네. 그런데 시간이 음.

저희도 구로로 이사를 했어요.
아. 네.

명환이가 목사님 많이 보고 싶어 했어요.
????

한동안 명환이가 컴퓨터도 하지 못해서, 연락처를 몰랐어요.
네.


곽명환 집사는 내게 많은 숙제를 남긴 사람이다.

내게 중증 장애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던 사람.

1999년 한 자매에게 교회를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어 힘들어하는 형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만났던 사람.

그렇게 만나 출석교인 몇 명 없는 교회에서 집사 직분도 받고,

광명시에 있던 예본교회가 쫄딱 망해서(?) 구로로 옮긴 직후에도 한 동안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결국 내가 손을 놓아버린 사람.

그가 지난 1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페이스북 친구이면서도 들여다 보지 못하다가 권사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들어가보니 1월 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집사님 지인이 올린 글이 있었다.

17일 권사님을 잠시 뵙고 왔다.

곽명환 집사.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그는 이제 내 마음에 돌이 되어버렸다

사진을 찾아보니 사진도 많이 없다. 사진은 2006년 교회에서 하경이와 함께 한 사진과 2008년 교회에서 양평쪽으로 놀러 갔을 때 사진.

2005년 곽명환 집사가 장애인이 교회에 안가는 이유에 대해 이런 글을 보낸 적이 있었다. 목회하시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생각 해보셨으면 해서....

1. 원천봉쇄형

우리 교회도 같은 문제점이 있지만
대부분 교회가 장애인이 가기에 불편합니다.
많은 계단과 비장애인에게 맟춘 시설들
보십쇼 입구에 계단이 없는 교회가 있는지?
경사로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요.

2. 냉대형

일부 교회와 성도들은 우리가 가면 싫어합니다.
나를 싫어하는 곳에 가는 사람은 없겠죠?

3. 소외형

이 부분은 저도 느끼는 것입니다.
자의 건 타의건간에 장애인을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교제가 어려운건 사실인것 같습니다.
장애가 심할수록 말입니다.

4. 무지형

극단적인 예지만
어느 목사님이 이렇게 말씁하셨다고 합니다.
장애인은 믿음이 약하다 왜냐 기도하면 다 났는데
안났는건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 ㅋㅋㅋ
저도 그 소리 듣고 멍 하던군요
이렇게 일부 교회는 장애인에 대해 무지합니다.

이렇게 성경도 모르고 예수님의 사랑도 모르는 교회가
이 땅에 있다는것이 안타갑습니다.

한가지 부탁 성경 읽을때 혹은 설교하실때 병신, 벙어리 귀머거리 앉은뱅이
이런 말들은 순화해서 사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9년 5월 16일 목요일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님께 2.

안녕하세요 이광흠입니다.

김도현 대표님께 글을 쓴다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 이런 저런 일들에 치여서 입양과 관련한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 했는데 김도현 대표님께서 최근에 하신 말씀들을 들으면서 자료를 잠시 찾아보다가 지난 번에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도현 대표님께서 또 다시 제게 편지를 보내주셔서 저도 답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또 다시 글을 적습니다.

우선 양해를 구할 것은 김도현 대표님이나 저나 서로의 생각을 일정 조율을 할 수는 있겠으나 서로의 생각을 하나로 만들지는 못할 것임을 알기에 그저 제 입장에서 몇자를 적는다는 것을 밝히며 글을 시작합니다.

김도현 대표님도 아시는 것처럼 한국입양홍보회는 1999년 시작되었고, 그 시작은 스티브모리슨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입양을 바라봤고, 자신의 삶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처음 입양 단체를 만들었을 때 내 걸었던 것이 바로 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도현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는 “매우 기독교적인 이름” 이 되었습니다. 처음 공개입양을 시작하신 분들의 대부분도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이 명칭을 받아들였고, 초기에 활동을 시작한 사람은 아니지만 저도 이 이름에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해외입양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김도현 대표님께서 왜 이 이름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는지 알고는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하다보면 또 다시 더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야 할 것 같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김도현 대표님께서 어려움에 처했던 많은 해외 입양인들을 만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티브모리슨이라는 입양인을 통해 해외입양인들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스티브모리슨은 해외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입양을 간 사람입니다. 그는 어쩌면 김도현 대표님이 말하고 싶은 미혼모가 출산한 입양인이 아니라서 해외입양인들의 상황을 이야기 할 때 거부감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개인적으로 김도현 대표님이 말씀하고 싶으신 입양인들은 자기 생각도, 의지도 없는 유아기 신생아때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스티브모리슨이 시설에서 어느 정도 생활을 했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로 입양을 간 사람이고 더군다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티브모리슨은 김도현 대표님이 평소 가지고 계신 생각의 부류 즉,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위치의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기에 스티브모리슨은 김도현 대표님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과는 결이 많이 다른 입양인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입양이라는 담론을 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공개입양이라는 입장을 내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시작이 스티브모리슨이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입양에 대한 이야기에서 스티브모리슨이 빠질 수는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 부부가 첫째 아이를 입양한 2006년은 해외입양이 1,899명으로 그동안 2천명을 넘던 해외입양인들의 수가 1천 단위로 떨어진 해였고, 공식적인 입양의 날 행사가 시작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첫째가 생후 45일 째 되던 날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서류 일체가 정리된 것은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그 기간 일부에서 주장하는 ‘입양체험’ 기간을 거치는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는 첫째나 둘째 모두 첫 만남을 가진 날을 입양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입양을 전제로 가정위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려보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입양 절차를 밟는 동안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빨리 아이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가정위탁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최근 제 주변에 한 분도 가정위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에서 가정위탁을 ‘입양체험’이라 부르는 것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김도현대표님은 “입양활성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추세적으로 국내입양 아동의 수는 감소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입양활성화 정책의 재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자료들을 살펴보면 전체 입양 아동의 수가 전체적으로 줄어들었지만 국내입양의 수는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국내입양만 살펴보겠습니다.

2000년 1,586명
2001년 1,700명 전년도보다 114명 증가
2002년 1,694명 전년도보다 6명 감소
2003년 1,564명 전년도보다 130명 감소
2004년 1,641명 전년도보다 77명 증가
2005년 1,461명 전년도보다 180명 감소 입양의 날 제정
2006년 1,332명 전년도보다 129명 감소
2007년 1,388명 전년도보다 56명 증가
2008년 1,306명 전년도보다 82명 감소
2009년 1,314명 전년도보다 8명 증가
2010년 1,462명 전년도보다 148명 증가
2011년 1,548명 전년도보다 86명 증가 입양특례법 개정
2012년 1,125명 전년도보다 423명 감소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
2013년 686명 전년도보다 439명 감소
2014년 637명 전년도보다 49명 감소
2015년 683명 전년도보다 46명 증가
2016년 546명 전년도보다 137명 감소
2017년 465명 전년도보다 81명 감소

제가 말하고 싶은 점은 국내입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입양된 아동의 수가 현격하게 줄어든 시점은 바로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였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김도현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부분입니다.

“2012년에 갑자기 1,115명으로 420여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이는 2012년 8월 5일부터 법원의 판결로 입양을 가름하기로 했지만, 가정법원은 2012년 8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한 건도 입양판결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2012년 423명 그리고 그 다음 해인 2013년 439명은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스티브모리슨 같은 경우 자신이 시설에서 생활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시설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도(물론 좋은 시설도 있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도 제가 대표님께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설로 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2년 만에 입양아동이 862명이나 줄었습니다. 그 아동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입양아동의 수는 그 이후에도 큰 변화없이 아니 더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게 김도현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미혼모로부터 분리된 아동(사실, 분리의 단계에서 아동의 이익을 대편하는 국가의 공무가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즉 입양을 선호하는 아동의 1,300명 정도에서 1,000명 정도로 감소하고 있는 객관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미혼모로부터 분리되어 입양 가능한 아동의 숫자가 1,000명대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내입양에서 비선호하는 남아인 영아들도 여기에서 하나의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객관적 조건이 입양아동의 감소 추세를 이어가게 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도현 대표님은 지난 2011년 한국입양홍보회에서 남아들 중심으로 홍보영상을 만들어 진행하려던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를 하셨고, 심지어는 어떤 이들은 아동 매매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했으며, 2011년 6월 3일 MBC 9시 저녁 뉴스에서는 입양 대상 아동 TV 영상에 대한 꼭지에서 “입양아 상품화?”라는 글을 꼭지 머리에 달기도 했습니다. 아동의 인권, 초상권 등을 위반했는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를 한다고 했고, 결국 이 사업은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아 중심의 입양 문화가 문제라고 한다면 남아들을 입양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자 했던 노력들까지도 아동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막으셨던 분이 김도현 대표님이십니다.

김도현 대표님 페북을 보니 어떤 분이 댓글로 입양부모들의 폭력성을 이야기 하시더군요. 그리고 입양체험이라는 말씀도 하시고,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저 같은 입양부모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베이비박스까지 이야기하면 더 길어질 것 같아 간단하게 글을 정리합니다.

저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가정의 형태에 관계없이 모두가 잘 살았으면 하는 사람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채우는 형식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김도현 대표님의 말씀이 제게 그리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김도현 대표님의 글은 늘 내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 다른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기 때문입니다.

김도현 대표님께서 해외입양인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하시는 점 감사드립니다. 또한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에 대해 애쓰시는 점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입양이라는 단어로 묶어 내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6년 처음 입양을 진행할 때 광명시 공무원들도 입양 절차에 대해 숙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공개입양으로 진행을 했고, 45일된 신생아였지만 이른 바 고아호적을 만들어 서류절차를 입양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1년 둘째를 입양을 진행할 때로 둘째는 호적이 있던 아이였습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절차를 잘 몰랐습니다.

김도현 대표님,

“이는 마치 비포장도로에서 과속을 내는 정책에 다름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먼저 도로 포장을 비롯한 정비를 하고, 안전 팬스들을 제대로 갖추도록 하고 나서야 속도를 높여도 괜찮다고 해야지, 비포장도로에서 (정부의 통제 없이) 과속을 하면, 도로도 상하고, 자동차도 상하고, 운전사도 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입양아동에게도 입양부모에게도 입양실천 사회복지사에게도 다 상처와 후유증을 남기는 식의 그런 정책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위에 적은 대표님이 말씀을 그대로 김도현 대표님에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시설로 가게 되었는지,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벌써 그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겠네요.

그냥 제 생각을 적은 동영상 주소를 적으며 글을 마칩니다. 요 며칠전 동영상 하나를 만들어봤습니다. 그냥 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니 혹여나 보시게 되면 아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세요.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창덕궁 나들이.

안녕하세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 공동대표 이광흠입니다.

열린사회구로시민회는 싱그러운 5월을 맞이하여 주변의 사물과 아름다운 조화미로 인하여 유네스코 세계보존유산으로 지정된 조선후기의 정궁인 창덕궁 나들이를 떠납니다.

날짜 : 5월 25(토)
시간 : 오전 11시, 창덕궁앞 매표소
참가비 : 2만원(입장료와 점심값 포함)
문의 : 이광흠(010-8812-7428)

https://forms.gle/aW2cPu9zKbi2X5oQ9

2019년 5월 12일 일요일

푸념.

5월 6일 동물원 나들이.

두 딸과 여러 사연 만들며 과천에 있는 서울동물원에 다녀옴.


5월 7일 보은으로.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반편견입양교육’이 있어서 다녀오고, 늦은 시간 아내가 부탁한 일을 마치고, 다음 날(5월 8일) 아버지가 이사를 하시게 되서, 보은으로 출발. 7일 늦은 시간 차를 내리 달리다가 피곤해서 천안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보은에 도착하니 시간은 8일 3시 근처.


5월 8일 사진 한 장.

저녁에 장례식장을 가야하고, 다음 날(9일) 시흥의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수업도 가야 해서 이삿짐을 대충 정리하고는 3시 넘어 출발. 중간에 가스를 넣느라 휴게실에 한번 들리고는 집으로 바로 왔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7시가 넘다니 에휴. 오는 중간 차기 밀리니 내비게이션이 춤을 추고, 차도 내비게이션을 따라 낯선 거리를 방황.

7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니 하람이가 자신이 쓴 편지를 읽어봤느냐고. 읽지 않았다고 하니 자신이 쓴 편지를 꼭 읽으라며 신발장 문에 붙여진 편지 앞으로 끌고감. 편지 읽고 사진 한 장.


5월 9일 하람이 입양한 날.

하람이와 뭔가를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나지를 않아서 결국 하람이는 학교가 끝나고 학교 동생네 마실을 가고, 하경이는 혼자서 집을 지키고, 아내는 회의, 나는 저녁을 먹고, 5.18 역사 특강을 진행하는 사무실로.

5월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달. 5월 1일 하경이 생일. 5월 9일 하람이 입양 생일.

하람이 입양 절차가 모두 마친 것은 그 뒤의 일이지만 우리는 하람이가 집에 처음 온 날을 하람이 입양 일이라 부르고 있음.

추억 하나. 2011년 5월 3일.

하람이를 입양하던 해인 2011년 5월 3일(화)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를 만남. 당시 시설에 입양 대기 아동의 수가 많아 그 수를 줄여볼까 해서 한국입양홍보회에서는 시설에 있는 입양대기아동 중 남아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찍어 사람들에게 입양을 알리려던 시점에 김도현 대표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아동의 인권을 이야기하며 거세게 반대 의견을 피력.

당시 나는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을 따라 뿌리의 집 인근 식당에서 김도현 대표 내외를 만남.

여러 이야기가 있었고, 김도현 대표는 자신이 해외에서 경험한 입양의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와 현재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입장을 담담하게 풀어냄. 김도현 대표는 입양에 대한 담론을 없애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합리함들을 없앨 수 없다는 입장.

당시 시설에 있는 아동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김도현 대표는 그들을 생각할 때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을 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습니다. 김도현 대표는 입양부모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는 말도 함.

시간은 흘러 2019년 5월 8일 국회에서 진행된 싱글 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에서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는 2006년부터 입양의 날을 지켜왔지만 입양은 증가하지 않았다고 말을 함.

사실 그동안 가능하면 김도현 대표에 대해 반응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속에서 뭔가 훅하고 올라와서 보건복지부에서 입양통계를 찾아서 정리. 문제는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점 점 더 화가.

2011년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고 2012년 시행되면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못 만났는지가 숫자로 보이니 점 점 더 화가 남. 전부개정 된 입양특례법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하경이와 하람이 같은 아이들이 부모를 못 만났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는 우리사회가 입양의 날을 만들었지만 여러 상황으로 입양의 수는 계속 감소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볼 때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입양은 크게 감소를 했고, 그 책임은 김도현 대표에게도 있다고 생각함.

2012년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면서부터 급격하게 국내입양이 줄었고, 2011년 1,548명이던 국내입양이 2012년 1,125명, 2013년에는 683명으로 줄어드는 상황. 이 후 국내입양의 수는 회복되지 않음.

특히 이 시기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이들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남. 2011년 37명, 2012년 79명, 2013년 252명.


5월 10일 늦었다.

열린사회시민연합 집행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저녁 10시가 조금 넘어 부천에 돌아와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산학교의 한 위원회 회의를 갔다가, 11시가 넘어 돌아오다 한 사람과 조금 더 이야기하고 돌아와 글 하나 쓸까 뒤적이다보니 다음 날 2시. 글 쓰는 거 포기.


5월 11일 입양의 날.

산학교 1시 식구총회, 4시 설립총회. 입양의 날 행사는 세종대학교. 입양의 날 행사 참여 포기. 설립총회 끝난 뒤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사람들과 잠깐 이야기하다가 아내와 아이들 두고 집으로 돌아와 기절.


5월 12일 푸념.

일찍 기절한 탓에 조금 이른 시간 눈이 떠져서 습관적으로 페이스북 확인. 잉?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가 내가 올린 글을 공유?

부랴 부랴 글 하나 써 올리고, 예배를 마친 후 예전에 살던 집 사진을 찍으러. 하경이가 4시 쯤 밖으로 조용히 나감. 물건 사러 편의점에 들렸더니 하경양 컵라면을. 교회에서 점심을 안먹더니.

참, 정신없이 일주일이 흘러 흘러 지나 감.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님께.

지난 2011년 5월 3일(화) 한국입양홍보회에 둘째 하람이를 입양하려고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상의를 하려고 들린 적이 있습니다.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김도현 대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한국입양홍보회에서는 시설에 넘쳐나는 입양대기아동 때문에 이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남아 중심으로 홍보 영상을 만들어 TV 등에 내보내자는 입장이었고 실제 동양상도 찍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이런 상황을 아는 입양부모들 사이에서는 입양을 보내는 시설에서 이제는 양육시설까지 병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걱정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만큼 시설에 있는 입양대기 아동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동이 입양을 가지 전까지 보호하는 위탁모들이 보호하는 아동의 수가 증가해서 둘 또는 세명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도현 대표를 비롯한 목소리 큰 사람들이 아동의 인권을 무시한 행동이라며 반발을 했고, 인권위에서도 방송을 내 보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현희 회장님이 김도현 대표를 만나러 가겠다는 말에 따라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뿌리의 집 인근 식당에서 김도현 대표 내외와 식사를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김도현 대표는 본인이 해외 입양인들을 만나며 겪었던 이야기며,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담담하게 풀어냈습니다. 나와 한현희 회장님은 이에 대한 나름의 반박과 동의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김도현 대표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양육시설로 가야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김도현 대표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해결점은 없었다. 아마 지금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김도현 대표는 입양이라는 담론을 없애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입양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두고서 정부가 다른 어려운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도현 대표의 입장이었고, 그 생각은 2019년 현재도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내가 김도현 대표가 한부모의 날 컨퍼런스에서 했던 이야기를 올리며 입양 통계 변화(2000~2007)를 올린 글에 본인의 페이스북으로 옮기며 자신의 입장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김도현 대표는 2000년 이 후 입양의 감소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 입양기관의 무분별한 입양 알선의 감소 등의 원인과 가정법원의 입양부모자격심사의 강화라는 긍적인 평가가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 역시 이런 점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2000년 이 후 완만하게 줄어들던 입양은 2011년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 이 후 급속하게 줄었음을 보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입양의 날이 제정 된 2005년 이 후 2007년 처음으로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추월했고, 2008년까지 완만하게 줄어들던 국내입양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입양의 경우 완만하게 줄어든던 숫자가 도리어 증가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면서부터 급격하게 국내입양이 줄었고, 2011년 1,548명이던 국내입양이 2012년 1,125명, 2013년에는 683명으로 줄어드는 상황이 되었고 이 후 국내입양의 수는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특히 이 시기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이들의 수는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2011년 37명이던 아이들이 2012년 79명 20013년 252명으로 늘었습니다.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을 추진했던 분들은 베이비박스의 아동의 변화와 2011년 전부개정된 입양특례법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게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은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도현 대표님.

그 짧은 시기(2011년~2013년)에 발생한 국내입양 감소 및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동의 증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하시겠습니까?

대표님이 보시기 좋으라고 표를 다시 정리했습니다.

2019년 5월 10일 금요일

입양의 날이 무슨 죄?

내일이면 입양의 날인데 입양의 날이 무슨 죄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입양의 날은 5월 11일입니다.

2019년 5월 7일 화요일

5.18 역사 특강.

안녕하세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 공동대표 이광흠입니다.

열린사회구로시민회에서는 5월을 맞이하여 5.18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전두환을 비롯한 쿠데타 세력이 5월 광주의 목소리를 왜 막으려 했는지 살펴봅니다.

1강: 유신의 종말과 신군부의 쿠데타(5월 9일)
2강: 서울의 봄과 광주 시민의 항쟁(5월 17일)

강사 : 이동진(한국사강사), 장소 :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사무실-서울 구로구 부일로 17길 55(궁동) 202호 , 오후 7시 30분, 참가비 10,000원

문의 : 이광흠(010-8812-7428)

참가신청은 구글 (https://forms.gle/qHN1gtA9tbpHW1TAA) 또는 이광흠(010-8812-7428)에게 문자 주세요.

2019년 5월 5일 일요일

아이들과 하루 살기.

둘째 하람이가 동물원을 가고 싶다고 수 차례 진정을 하였으나 상황이 매 번 여의치 않아 하람이의 소원은 받아 들여지지 못했다.

5월 4일 토요일.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아내 : 오늘 인천대공원이라도 갈까?
하람 : 싫어. 동물원.

하경 : 난 동물원 싫어.
나 : 동물원 가자.

아내 : 하경아 동물원 갈래?
하경 : 동물원 싫어.

아내 : 동물원 가자.
하람 : 좋아.
나 : 그래 가자.
하경 : 음. 그럼 나도 갈까?

얼추 교통정리가 끝나고, 출발 준비하다가.

아내와 하경이가 충돌.

하경 : 나 안가.
아내 : 너 정말 그럴래?

나 : 출발하자.
하경 : 나는 싫어.

아내 : 하경 우리 늦게 들어올껀데?
하경 : 그래도 싫어.

버스 정류장.

하람 : 혼자 가면 심심한데.
아내 : 한 번 가서 달래 봐.

집.

나 : 하경 가자.
하경 : 싫어 싫다는데 왜 자꾸 가자고 그래.
나 : 그럼 아빠 간다.

지하철.

하람 : (카톡) 언니 어디야?
하경 : (카톡) 집.

하람 : (카톡) 언니 와라.
하경 : (카톡) 동물원에 갔잖아.

하람 : (카톡) 우리가 기다릴께.
하경 : (카톡) 그럼 갈까?

아내 : (카톡) 부천역에서 온수역으로 와서 7호선 갈아타고 이수역으로 와서 전화해.
하경 : (카톡) 알았어.

이수역.

하람 : 이번 차에 오려나?
나 : 조금 더 기다려보자.

하람 : 이번 차에 와?
나 : 음 다음 차에 올 것 같아.

아내 : 바로 출발을 안했나 보네.
나 : 그러게.

나 : (전화) 어디야?
하경 : (전화) 가산디지털단지.

하람 : 이번 차에 와?
나 : 한 참 더 기다려야 해.

하람 : 묵지빠 하자.
나 : 가위바위보.

하람 : 아직도 안와?
나 : 거의 다 왔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하경 : (전화) 아빠가 전화해. 전화비 나가.
나 : (전화) 내렸냐?

하경 : (전화) 나 올라가고 있어.
나 : (전화) 올라가지 마. 갈아타야 해.

아침부터 드라마 한편찍고, 우리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갔다. ㅎㅎㅎ

3시너머 4호선 대공원역에 내린 우리는 코끼리 열차타고, 동물원 들어가 구경하고, 문을 닫는 7시 쯤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다 이수역에 내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ㅎㅎㅎ

2019년 5월 3일 금요일

추억의 모종삽.

오늘 예전에 살던 집에서 물건들을 옮기다 발견한 모종삽.
자세히보니 하경이 돌 때 만든 모종삽. ㅎㅎㅎ

사진은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장모님과 하경. 처음에는 입양을 반대하셨지만(딸 걱정에 너희들끼지 잘 살아라) 입양 후에는 하경이를 가장 사랑하셨다.

그때가 생각나서 블로그에 있는 돌 순서지에 넣고 사람들 앞에서 읽었던 글을 퍼 옴.

2006년 5월 1일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복된 아이는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없어 새로운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복된 아이는 새로운 엄마와 아빠를 만나 아름다운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며 하경이라 불렀습니다.

2006년 6월 15일 목요일 오전에 하경이를 처음 만난 엄마와 아빠는 하경이로 인해 웃음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경이를 사랑하는 딸로 만난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 감사해 하나님께 늘 감사를 고백합니다.

처음 하경이와 함께 집에 돌아온 아빠는 하경이에게 하경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하경이가 부딪힐 수많은 편견과 오해의 장벽들을 모두 허물 수는 없지만 아빠의 능력이 닫는 데로 최대한 허물어 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이렇게 하경이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하경이와의 약속을 지키는 행위의 한 부분이라 생각을 합니다.

정부에서는 작년부터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하고 올 해 제2회 입양의 날을 지키게 됩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입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들을 줄여가야 하는 일은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의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라 말을 합니다. 입양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의 행위가 아닌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은 실천 행위입니다.

입양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하경이와 같은 입양 자녀들을 어떤 불쌍한 아이를 마음씨 좋은 사람이 받아들여 키우는 것이 아닌 보통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자녀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이들이며 부모라고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하경이의 첫 생일을 기뻐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07년 5월 1일 하경이 아빠가...

사진 좀 찍자.

5월 2일 저녁 아빠의 배가 자꾸 나오는 게 걱정인 둘째와 운동하러 부천공고에 갔다가 사진 한번 찍자고 하니 자꾸 피해서.

나 : 딸 하고 사진 좀 찍자.
하람 : 싫어.

나 : 딸하고 사진 찍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하람 : 아빠하고 사진 찍기가 너무 싫어서 원.

나 : 음.

2013년 사진도 한 장.

2019년 5월 1일 수요일

이상해.

하경이 생일 선물을 사가지고 오늘 길.

하람 : 이상해?
나 : ?

하람 : 여자 아이들은 싸움을 하면 말로 하는데 남자 아이들은 몸으로 해
나 : 음.

언니 생일 선물 산다고 동네 문방구에 들려서 불량식품 사가지고 와서 편지쓰고, 선물 포장.

한일전 국회.. "자한당, 서울의소리 응징취재 두려웠나?"

하경 생일.

2006년 노동절에 태어난 하경, 우리나이로 14살.

페이스북에 하경이 8살 생일 때 사진(2013년 성공회대)이 있어서 잠시 사진들을 찾아봤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이 줄어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산학교에서 사진을 찾아보았지만 생각보다 많지가 않네요.

하경이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9일(금) 산학교 백반(100년 프로젝트 반) 학생들과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서울 장애인권영화제 개막식 행사에 참여한 사진.

9살 하람이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수) 들살이 사진.

지난 4월 27일 4.27 DMZ 평화인간띠잇기 때 산학교 백반 학생들과 함께 김포에 갔을 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