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9일 수요일

달아.. 달아...

하경이 달 그리러 옥상에 왔다.

달이 구름 속에서 나오지 않아 달 나오기를 기다린다.

잠깐 모습을 보였다 숨어버리는 달과 20분째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하경이가 그리다보면 숨고... 그리려면 숨고...

달아... 어여 좀 나와라...

오늘은 음력 6월 14일 시간은 10시 40분... 음..

결국... 철수... ㅎㅎㅎ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흔적...

하경이가 며칠 하지 못 한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 왔다.

숙제는 달 그리기...

음력 6월 13일 저녁 7시 28분...

오늘 하루 종일 구로 안양천 물 놀이장에서 놀고 하람양은 기절 해 있고, 하경양은 달 뜰 때만 기다리다 옥상에 올라와 달 그리고 있다.

딸 달그리는 모습 지켜보다 흔적 남긴다~~

2015년 7월 23일 목요일

우리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

사실 내가 쓰고 입양과 관련한 내용을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아래 기사 같은 것들 때문이다.

[단독]“파양시켜 주세요” 법에 호소하는 입양아들

입양후 학대•성희롱… 천륜 끊는 가정 한해 100여건…미성년은 직접 파양청구 불가능… 대법원, 법개정 추진

이 기사는 세계일보가 2015년 7월 16일 쓴 기사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7/15/20150715004458.html?OutUrl=naver )

기사 제목과 부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런데 내용을 보면 입양은 입양인데 입양법에 의한 것이 아닌 민법에 의한 친양자입양이다.


“아저씨가 오늘부터 ○○이 아빠야.”

2009년 4월 한국 땅을 밟은 A(14)양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소개한 B씨를 처음 만났다. 중국 출신인 A양의 어머니는 B씨와 재혼했으며 A양은 B씨에게 입양됐다. 하지만 A양이 B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단란했던 가정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B씨는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A양과 B씨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졌다.


이 기사 내용과 지난 번 입양 부모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인터넷 기사 내용을 다룬 내용이 있다.

YTN 라디오의 전성기 법률 상담소 / "입양의 그림자" 2015년 7월 22일 ( http://radio.ytn.co.kr/program/?f=2&id=37219&s_mcd=0330&s_hcd=01 )


나는 입양부모들과 또는 입양인들과 공개입양이 옳다. 비밀입양이 옳다. 주장하며 다투고 싶지 않다. 위에 링크된 기사들을 본 사람들, 혹여나 그들의 잘못된 시선을 조금 이라도 바로 잡아보고자 노력하기에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끔 내가 카페에 무책임한 것처럼 때로는 무시하는 것처럼 글을 쓰더라도 저 인간은 그릇이 저것 밖에 되지 않는구나 무시하면 좋겠다.

입양의 날이 다가오면 위 기사와 비슷한 내용들이 하나 둘 터져나오고, 그 기사들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하는 사람들의 자격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다보면 결국 입양 대기 시간은 늘어가고, 아이들은 시설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버린다.

입양이 된 아이들은 좋은 부모를 만나든 조금은 까탈스러운 부모를 만나든 가정에서 자란다. 그런데 더 많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아이들이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현재와 같은 입양법 기준이라면 우리는 하경이와 하람이를 입양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기준이 한참이나 미달이었으니까. 아내는 몸이 아픈 기록이 있지, 미자립 교회 목사지. 재정적 상황은 불투명하지. 그런데 지금 큰 아이를 입양한지 만 9년이 지나고 있고, 아이는 부모와 다투면서 잘 살고 있다.

우리 안에, 우리 만의 이야기를 우리끼리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위에 기사들이 뭐가 문제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고,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내 아이를 위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2012년 찍은 아이들 사진이다.

하람 생일과 7월 20일 글에 대한 변명

7월 22일(수요일) 하람이 생일이다. 하람이가 다니는 궁더쿵 어린이집에서 7월 16일(목) 생일 잔치가 있어서 준비하던 사진들과 생일을 축하해주던 궁더쿵어린이집 친구들 사진이다.

정신이 없어서 하람이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편지를 쓰지 못한 탓에 생일잔치 당일 부랴부랴 풀잎에게 카톡으로 보낸 편지를 옮겼다.

사랑하는 하람

생일 축하해

처음 하람이를 만나던 날 엄마, 아빠는 너무 좋았단다.

하경이 언니도 너를 만나기를 정말 정말 많이 기대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었단다.

하람아~~ 7월 22일 가족끼리 기분 좋게 보내자~~~

오늘 궁더쿵에서 **이 오빠랑 생일 잔치 잘 하고 저녁에 보자~~

참, 엄마는 오늘 1박 2일 학교일로 가서 내일 만나겠지만.... 내일 엄마가 하람이 만나러 갈께^^

이하람.

엄마, 아빠, 언니가 아주 아주아주 많이 많이 사랑해~~


그런데 나는 정작 하람이 생일인 7월 22일은 저녁 9시가 넘어 들어가 작은 선물 하나 주고 말았다. 쩝.

참, 지난 7월 20일 쓸 글에 한 카페에 댓글이 많이 달려서 긴 변명의 글을 적어본다.

지난 7월 16일(목요일) 은평시민회에서 연락을 받았다. 구로시민회 청소년 아동 관련 활동 자료를 정리해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일요일까지 늦어도 월요일까지는 자료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7월 16일(목) 7월 9일 구로아동복지기금마련 작은음악회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단체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아내가 1박 2일 교사 엠티를 갔기 때문에 저녁에는 하경, 하람과 함께 보내야 했다.

7월 17일(금요일) 대안학교라 그런지 다른 학교보다 일찍 방학을 한 탓에 하경이는 월요일부터 다른 친구들 집에 마실을 갔지만 이 날은 두 명의 언니와 한 명의 친구가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과 한강 망원수영장으로 갔다. 아이들이 물 놀이 하며 좋아했지만 사실 그 더위에 물에서 논다는 것 때문에 내가 더 좋았다. 11시 쯤 도착해서 저녁 6시가 넘어서 수영장에서 나왔다.

7월 16일(목)부터 19일(일)까지 구로아트밸리에서 문화나눔 초대가 있어서 회원들에게 안내하는데 참여 의사를 밝히는 분들의 수가 자꾸 변경이 돼서 아트밸리 측과 조율하고 안내 문자 보내느라 노는 중에도 핸드폰이 손을 떠나지 않는다.

7월 18일(토요일) 작은 아이가 다니는 궁더쿵 어린이집 총회다. 전 날 물에서 신나게 논 덕분에 등이 익어 쓰라리고, 몸도 피곤했지만 총회 때 아이들 돌봄 아마를 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몰아(?) 다른 아마(아빠, 엄마의 줄임말)들과 근처 산에 갔다.

구로아트밸리의 문화 나눔 초청을 받게 된 로감자와 줄게랑의 관람 연령이 초등학교 이상인데 아주 어린 친구까지 신청한 경우가 생겨서 전체 문자를 다시 보내야 했고, 구로 올레길을 걷고 있는 팀과 연락을 주고 받느라 핸드폰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산으로 갈 때부터 다투는 아이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넘치는 에너지를 마구 발산했다. 아이들이 다투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갔는데 자꾸 핸드폰만 만지고 있으니 주변에서 핸드폰 그만 하란다. 에구...

총회가 끝난 후 저녁에는 여러사정으로 궁더쿵을 그만 두는 가정들이 있어서 엄마들끼리 송별회를 한다고 해서 저녁에 아이들과 집에 있었다.

19일 주일 오후 구로아트밸리에서 아내와 하경이는 로감자와 줄게랑을 보고, 하람이와 나는 밖에서 있다가 서울에 올라오신 아버지를 만나 놀다가 집에 왔다. 저녁에는 운동을 한다고 아내와 하경, 하람과 함께 우신고등학교 운동장에 갔다. 아버지는 같이 가신다고 하시더니 주무셨다^^

아이들은 흙놀이에 빠지고, 아내는 운동장을 달리고, 나는 걷는 둥 마는 둥 하다보니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아이들을 씻기고, 은평에 보낼 자료를 정리하러 사무실에 갔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음 날이다. 월요일 아침에 은평에 자료를 보내고 어쩌다보니 5시가 넘어서 새벽에 잠시 본 글을 떠올리며 글 하나를 적었다.

사실 나는 입양이라는 단어를 물고 살지 않는다. 관심이 그쪽에 있어서 글을 종종 쓰고는 있지만 사실 요즘은 글을 쓸 시간도 없다. 사실 이 글도 새벽에 사무실에 나와 잠시 쓰고 있다. 내가 일년에 며차례나 입양과 관련한 글을 쓸까? 어쩌다 보니 몇 개의 블로그가 있어서 같은 글이 몇군데 쓰여지는 탓에 내 글에 대한 반응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때때로 내가 쓴 글에 달리는 댓글에 답을 해주면 좋겠지만 사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다보면 내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거기다 쏟아야 하기 때문이고, 사실 핸드폰으로 글을 읽는 경우가 많은데 댓글에 답글을 다는 건 안녕하세요. 잘계시죠? 이정도다. 말이 길어지면 두서가 없어 오해가 생길 확률이 높고, 짧은 인사 말도 누구에게는 하고 누구에게는 하지 않고 하는 것 같아 때때로 인사 글도 적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다보니 그저 나는 외치는 입장이고, 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도 많다. 글을 내가 쓰지만 해석은 읽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일일이 소통을 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무시(?) 해 버리니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그리고 사실 내 블로그를 찾아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입양과 관련한 글 때문에 오지는 않는다 예전에 적었던 성경 본문들 때문에 검색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들어와서 실망이 크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검색해 들어온 사람이 똥 밟은 걸 내 탓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다.

입양, 뭐 일부의 사람들이 여러 할 말들이 많은 건 안다. 아니 어쩌면 그들만 말을 하고, 말을 듣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 일부의 사람 중 하나인 나도 그저 다른 사람들이 말을 듣고 싶어 잠시 여러 곳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사실 올 해는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활동도 안한다. 시간도 없고, 사실 여러 조건들에 내가 미달이기 때문에 참여도 어렵다. 그래서 강의 같은 것은 말도 하지 않는데 오해 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적는다.

난 그저 공개입양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아픔은 숨긴다고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지금은 필리핀에 계신 한 입양 아빠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는 입양아야라는 말을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당시 우리가 내린 결론은 그럴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결론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왜 입양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할까? 그건 입양이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가짜 엄마, 아빠가 싫다고 울던 7살짜리 아이가 있다. 그게 우리 큰 아이다. 그런 말을 하는 아이가 잘못인가?

아이가 혼이나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한 단어로 쏟아냈을 뿐이다. 그런 소리를 듣는 나는 그 아이에게 가짜 아빠일까? 진짜 아빠일까?

내가 입양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비밀입양을 원하는 분들을 설득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나는 경우의 수를 가지고 볼 때 공개입양이 옳다고 보기 때문에 공개입양을 선택했다고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배 입양인들이 공개입양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했기 때문에 그 나마 많은 입양인들과 그 가정이 과거보다는 처우가 좋아졌다는 것은 인정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다. 육아는 한 개인 또는 한 가정의 책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20일 월요일

뭐가 다른데?

안녕하세요 깡통 이광흠입니다.

어제 잠도 잘 못 자고(글이 두서가 없을 것이라는 말), 해야 할 일도 다 못한 채 그냥 몇자 적습니다.(잠도 못자고, 시간도 없는 상태라면 어떤 글이 될까???)

자주 가는 카페에서 공개입양과 비밀입양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어 개인적인 입장을 적으려 자판을 누르고 있습니다. 사실 시간이 많으면 차분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간단하게 적어봅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카페에서 공개 입양과 관련한 글에 댓글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개입양을 하는 분들에 대한 공격적인 글들 때문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댓글은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 댓글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상당히 공격적인 글들이었습니다.

먼저 전 공개입양 1세대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공개입양이 불가능하다는 입장들로 점철되던 시기 공개입양 1세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습니다. TV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심지어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에다가도 입양은 사랑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공개입양 1세대들이 모인 한국입양홍보회는 공개 입양 부모들의 첫 자조 모임이었고, 입양기관들과도 협력과 견제를 하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개인적으로 요즘 회비만 내는 회원입니다.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개입양이라는 아니 입양이라는 단어를 세상에 꺼낸 것은 바로 한국입양홍보회였다고 생각하기에 한국입양홍보회 선배 입양 부모님들의 눈물과 수고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많은 분들이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우리 딸은 입양아라고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말이 아닌 개인 블로그를 통해, 딸이 다니는 학교에,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입양과 관련한 글을 한 번씩 쓰곤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두 아이를 입양한 아빠고, 두 아이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딸들이 입양아로서 겪어야 할 아픔을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두 아이의 입양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나는 두 아이가 자신이 겪어야 하는 아픔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아빠로서 함께 힘들어 하겠지만 그 아픔을 이겨내야 할 것은 오로지 그 아이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두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들이 아픔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고, 때로는 힘들어 할 때 함께 울어줄 수 있으려 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삶은 그녀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전 누군가를 위해 입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전 단지 우리 두 딸이 살아가는 세상이 입양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고, 내 두 딸이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기에 입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작은 아이(6살)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 배에 자기를 그리고 언니를 그리고 집을 그렸습니다. 자기는 엄마 뱃속에 있고, 아빠는 집에서 잠을 잔다고 하더군요. 그 옆에서 누워 잠을 자니 다시 집에다 아주 작은 아빠를 그렸습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작은 것이라며 집에서 나오면 크다고 작게 그려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큰 아이도 어릴 적 가끔 엄마가 나를 낳았지라고 묻곤 했는데, 작은 아이도 엄마가 자신을 낳은 것이라 말하고 싶은 듯 합니다.

큰 아이 7살 때 가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2014년에 쓴 글에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coolie1/220095696668 )

입양인이 힘들다고요? 물론 힘들죠. 이해 할 수 없다고요? 물론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아는 것은 말도 안되죠. 단지 추정만 할 뿐.

자기 결정권이 없는 아이에게 우리는 입양을 공개했습니다. 왜냐구요? 처음 큰 아이를 만나면서 우리 아이가 자라는 세상에서는 입양인이 그저 평범한 주변인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글을 쓰냐고요? 공개입양이 마치 자기 결정권이 없는, 때로는 영웅심리, 보상심리로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까봐 적는 것입니다.

처음 공개입양 1세대들이 겪었어야 했던 비난을 생각해봅니다. 같은 입양 부모들 사이에서도 비난 받는 행동이라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하지만 그들 덕분에 오늘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어떤 아이의 부모가 되겠지요.

공개입양이 맞다 비밀입양이 맞다 그런 논쟁을 하고자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공개입양하고 공개입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남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그들의 눈물 때문에 입양인에 대한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큰 아이를 입양하고 짧게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의료급여 때문에 나온 것인데 생각보다 불쌍하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짧게 방송에 나왔습니다. 그 때도 불쌍하게 나왔습니다. 화가 나기는 하지만 방송국에서 의도하는데로 그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방송 기억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습니다.

이 글도 사람들이 기억에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주변에서 입양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합니다. 처음 듣는 사람들이나 놀라지. 주변에서 뭐가 다른데? 이런 분위기죠.

난 이런 분위기가 우리 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분위기 였으면 하기에 입양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2015년 7월 15일 수요일

오늘 하루를 살아라.

오늘 하루를 살아라. 그리고 걸어간 길을 돌아보라.

뒤엉킨 길, 갈짓자로 걸어갈지라도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라.

가야 할 길을 몰라 당황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걸어라.

길을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침묵하며 기다리라.

혼자 걷지 말고 함께 걸어라.

누군가 네게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라.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라.

모든 이를 만족하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면 은혜를 잊지 말라.

아내와 딸들의 인생은 그들의 것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라.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 작은 종이라 불리는 자가 되라.


2015년 구로시민회에서는 혼자쓰지만 함께 읽는 글쓰기 교실이 열리고 있습니다. 위의 글은 7월 14일 상반기 종강하면서 강사인 박승균 선생님이 죽음 앞에선 내가 지금의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고 해서 적어 본 글입니다.

시간이 없어 대충 적었는데 박승균, 조태진, 오숙희, 유동순 4분이 오늘 하루를 살아라는 제목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카페 글쓰기 게시판에 올리다 생각하니 블로그도 있고, 밴드도 있어서 그냥 다 올려봅니다.

2015년 7월 12일 일요일

음모론...

네이버에 블로그가 있다.

평균적으로 90명 정도가 다녀가던 곳 인데 지난 6월 25일 부터 30명 채우기가 힘들다. 6월 24일 방문자수 90을 찍고 이 후 곤두박질치더니 올라갈 생각이 없다.

내가 방문자 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포스트에 큰 변화가 없는데 방문자 수가 급감했다기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안 쓴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는데 방문자가 20 언저리를 맴 도는 이유는 뭘까???

6월 6일 방문자수 94
6월 7일 방문자수 117
6월 8일 방문자수 118
6월 9일 방문자수 110
6월 10일 방문자수 136

6월 11일 방문자수 112
6월 12일 방문자수 114
6월 13일 방문자수 124
6월 14일 방문자수 117
6월 15일 방문자수 100

6월 16일 방문자수 104
6월 17일 방문자수 104
6월 18일 방문자수 141
6월 19일 방문자수 99 포스트된 글 이하경 초등학교 3학년 주제학습 중
6월 20일 방문자수 128

6월 21일 방문자수 100
6월 22일 방문자수 110 포스트 된 글 우짜지....(강화에 물주러 강 박근혜 대통령 관련 동영상)
6월 23일 방문자수 124
6월 24일 방문자수 90

6월 25일 방문자수 23
6월 26일 방문자수 31
6월 27일 방문자수 17
6월 28일 방문자수 21
6월 29일 방문자수 26
6월 30일 방문자수 24

7월 1일 방문자수 22 포스트 된 글 딸의 질문에 답하기.(딸에게 쓴 편지 글)
7월 2일 방문자수 35
7월 3일 방문자수 28
7월 4일 방문자수 21
7월 5일 방문자수 16

7월 6일 방문자수 24
7월 7일 방문자수 22
7월 8일 방문자수 18
7월 9일 방문자수 23
7월 10일 방문자수 22

7월 11일 방문자수 15

원래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음... 그럴지도...

1월(31일) 방문자수 3,001 일 평균 약 96.8명
2월(28일) 방문자수 2,598 일 평균 약 92.7명
3월(31일) 방문자수 2,985 일 평균 약 96.2명
4월(30일) 방문자수 2,656 일 평균 약 88.5명
5월(31일) 방문자수 2,998 일 평균 약 96.7명
6월(30일) 방문자수 2,844 일 평균 94.8명

7월(11일) 방문자수 246 일 평균 약 22.3명

2015년 7월 2일 목요일

딸의 질문에 답하기.

하경이가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주제수업을 하면서 인터뷰한 이야기(이하경 초등학교 3학년 주제학습 중 2015.06.19.)에 있는 내용을 생각하면서 하경이에게 쓴 편지입니다. 언젠가 아내가 자기 자랑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라 고민을 했지만 혹여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올립니다.


하경아 지난 번 입양에 대해 엄마 아빠 인터뷰 한 것을 아빠가 다시 글로 적어서 네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자꾸 미루다 이제서야 적어본다.

1. 엄마 아빠는 왜 나를 입양을 하게 됐나요?

엄마 아빠는 사실 결혼 전부터 입양에 대해 생각을 했었단다. 둘이서 아이도 낳고 입양도 하자고 했었는데 엄마가 많이 아파서 결국 입양만 하게 되었지^^

하경이 널 입양하기 전 아빠가 블로그에 적었던 글을 옮겨 봤어.

2006년 4월 15일 제목 : 넌... 가슴으로 낳은 딸

하경아 가끔은 엄마, 아빠가 네가 원하는 만큼 잘 해주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엄마, 아빠는 하경이를 위해 아주 오래 전부터 기도하고 있었단다. 엄마 아빠는 결혼 전부터 둘이서 입양을 하자고 했었거든...

하경이를 엄마, 아빠가 아이를 못 낳기 때문에 입양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우리 하경이가 알아줬으면 해... 엄마, 아빠가 아이를 낳을 수 있었어도 우리 하경이를 입양했을 테니까...

2. 입양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엄마 아빠가 입양을 한다고 하자 입양 결정을 잘 했다고 하는 분도 계시고, 엄마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았단다.


2006년 4월 4일 제목 : 하경이를 기다리며

아내의 몸 상태를 생각하여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고...
입양이라는 선택을 잘 했다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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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딸랑이와 첫병 소독기와 하경이 양말을 주위분들이 하나 둘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3. 입양을 결정하고 엄마 아빠는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무엇을 준비했나요?

아빠는 엄마 건강도 걱정이 되었고,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 그래서 한국입양홍보회에 들어가 먼저 입양한 가족들이 적었던 일기들을 거의 다 읽었단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입양특례법 등을 찾아보는 등 입양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했단다.
2006년 4월 4일 제목 : 하경이를 기다리며

요즘은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아내가 비가 오는 날엔 아픈 티를 많이 내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아픈 티를 내면 많이 망설이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조만간 어여쁜 딸을 공개 입양하려고 합니다.
벌써 이름도 지었습니다.

이하경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하경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내의 몸 상태를 생각하여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고...
입양이라는 선택을 잘 했다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남편인 저는 아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땐 하경이를 좀 더 시간이
지난 뒤 입양을 하자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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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딸랑이와 첫병 소독기와 하경이 양말을 주위분들이 하나 둘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경이가 오면 아내가 육체적으로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지금처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친정에 간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몸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는 하경이를 조금 더 있다가
데리고 오자는 말을 해 버렸습니다.

비가 오기 전이라 몸이 많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입양을 결정하기 까지 과정을 시간 날 때 하나 둘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 포스트에는 딸 하경이에 관한 이야기를 적으려 합니다.
하경이 동생들이 생긴다면 하경이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도 적으려 합니다.

그래서 하경이와 하경이 동생들이 글을 읽으며
아빠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 엄마 아빠는 나에게 입양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어땠어?

하경이에게 입양에 대해 다른 입양 가족보다 좀 더 일찍 알려줬던 것 같아. 그래서 가끔 네가 하는 말 때문에 어른들이 당황하는 일이 생기곤 했단다.

2010년 9월 8일 제목 : 엄마가 둘, 아빠가 둘

하경이가 몸이 좋지않아 화요일에 어머니에게 SOS를 했다.
손녀 딸이 아프다는 소리에 아침부터 달려오셨다.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함께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가시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하신다.

하경이가 아빠가 둘, 엄마가 둘이라고 그러더라....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더구나...

어머니 그거 우리가 가르쳐준거예요
그러냐 괜한 걱정했구나...

하경이에게 자신을 낳은 엄마가 있고 지금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때 나름 걱정도 많았다.
조금 더 큰 다음에 알려줘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얼마나 커야 하는 거지?

많은 입양 부모들은 어린나이에 입양아동에게 입양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다.
지금의 나나 아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경이를 호적에 올릴 때도 출산으로 해야 하나 입양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입양으로 호적에 올렸다.
그래서 입양아동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없애는 것이 하경이를 위한 길이라 생각해서 가끔 글도 쓴다.

김길태 사건 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의 대부분은 입양에 대한 편견 속에서 쓰여졌다.

입양은 혈연을 통하지 않고 사회적이고 법적인 과정을 통해 영구적인 부모와 자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하경이와 나는 사회적이고 법적인 과정을 통해 영구적인 아빠와 딸이 된 것이다.
즉, 나는 하경이를 낳은 친생부모는 아니지만 난 하경이의 친부모인거다.

입양부모는 천사도 아니고, 어떤 미담의 주인공들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단지, 한 아동이 입양을 통해 부모를 만나는 것,
즉, 한부모이든 두명의 부모이든 한 아동에게 영구적인 부모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경이에게 언제 입양 사실을 말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단지 기억나는 것은 하경이가 아빠가 둘, 엄마가 둘 이라는 사실을 무척 자랑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하경이가 다니는 궁더쿵 어린이집에서 한 엄마가 당황했었다는 말을 들었다.
갑자기 자기는 엄마가 둘, 아빠가 둘이라는 소리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단다.

하경이가 하는 소리에 하경이 할머니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하경이에게 우리 부부가 이야기를 했다는 소리에 안심이 되시는 것 같았다.

언젠가 하경이가 이런 말을 했다.

깡통(내 별명이다)은 예쁜이 할머니(할머니가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가 낳았고,
징검다리(아내의 별명이다)는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가 낳았고,
나는 다른 엄마가 낳았어

지난 번 종단 연구때에도 하경이가 조사원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자신을 낳은 부모가 있고,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5살 된 하경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미래는 하나님 만이 아시기에 하경이가 더 자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단지, 하경이는 잘 자랄 것이라는 정도만 예상할 뿐 더 이상 뭘 바라겠나...

5. 엄마는 나를 10년 키워주셨는데 지금은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엄마에게 질문을 했지만 아빠도 한마디^^

아빠는 하경이와 하람이와 함께 살아서 좋았다. 하경아 네가 돌 (1살 생일) 때 아빠가 사람들 앞에서 읽었던 글을 보여 주고 싶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아빠의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

2007년 5월 5일 제목 : 하경이 돌을 끝내고...

2006년 5월 1일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복된 아이는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없어 새로운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복된 아이는 새로운 엄마와 아빠를 만나 아름다운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며 하경이라 불렀습니다.

2006년 6월 15일 목요일 오전에 하경이를 처음 만난 엄마와 아빠는 하경이로 인해 웃음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경이를 사랑하는 딸로 만난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 감사해 하나님께 늘 감사를 고백합니다.

처음 하경이와 함께 집에 돌아온 아빠는 하경이에게 하경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하경이가 부딪힐 수많은 편견과 오해의 장벽들을 모두 허물 수는 없지만 아빠의 능력이 닫는 데로 최대한 허물어 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이렇게 하경이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하경이와의 약속을 지키는 행위의 한 부분이라 생각을 합니다.

정부에서는 작년부터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하고 올 해 제2회 입양의 날을 지키게 됩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입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들을 줄여가야 하는 일은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의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라 말을 합니다. 입양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의 행위가 아닌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은 실천 행위입니다.

입양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하경이와 같은 입양 자녀들을 어떤 불쌍한 아이를 마음씨 좋은 사람이 받아들여 키우는 것이 아닌 보통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자녀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이들이며 부모라고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하경이의 첫 생일을 기뻐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07년 5월 1일 하경이 아빠가...

하경아 아빠는 네게 편지를 쓰면서 아빠가 예전에 적었던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아빠는 지금 네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아빠는 하경이와 하람이를 사랑하고 엄마를 사랑한단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하경이와 하람이 네 사람이 한 가족이 되어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놀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단다. 하경아 사랑해.

참, 이 글은 아빠 블로그와 산학교, 궁더쿵 등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