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8일 수요일

이해관계가 대립 할 때(마가복음 3장 1절~6절)

마가복음 31~ 6(쉬운성경)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손이 오그라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2.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진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나오너라.”
 
4. 그리고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러자 사람들이 아무런 대다도 하지 못했습니다.
 
5. 예수님께서 분노하시며 주위를 둘러보시고 사람들의 마음이 굳은 것을 아시고, 슬퍼하셨습니다. “네 손을 펴 보아라.” 그 사람이 손을 내밀자, 그 손이 나았습니다.
 
6. 바리새파 사람들이 거기를 떠나 헤롯당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가셔서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앞으로 나오게 하시고 사람들에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좋을 일을 하는 것과 나쁜 일을 하는 것,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에 대해 물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시며 주위를 돌아보셨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헤롯당 사람들과 만나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하려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고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괜히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들어날 것을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과 논쟁하기에는 그들의 논쟁의 근거가 너무 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마가복음 34) 하지만 이미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행위를 하던 문제를 삼으려 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자신의 입장과 다른 사람 또는 집단과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좁혀가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대립되는 상대방의 논리의 근거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근거만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은 안식일에 치료 행위를 하신 예수님과는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자 헤롯당 사람들을 만나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8년 부활절(41)을 앞두고 사순절을 지내며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순절 보다는 고난주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순절이라는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며 2018년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너무나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라 내 자신도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마가복음(단순하게 가장 짧다는 생각에 선택함)을 묵상하며 2018년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법 해석(마가복음 2장 23절~28절)

마가복음 223~ 28(쉬운성경)
 
23.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잘랐습니다.
 
24.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율법을 어깁니까?”
 
2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 부하들이 배가 고파 먹을 것이 필요했을 때,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바친 빵을 먹었다. 이것은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빵을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주기까지 했다.“
 
27.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르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항의를 하는 장면입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하십니다. 또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말씀하십니다.
 
마가는 제자들의 현 상황(밀을 자르는 상황)만 기록했지 그들(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이삭을 잘랐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태복음을 통해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121)
 
마가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적절한 답변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 이 문제는 예수님과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계속된 다툼의 한 축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사람들이 행하는 일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일 법을 유대교의 신학적 기초로 여겼습니다. 또한 안식일을 유대민족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것으로 여겼기에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려 했습니다.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하는 일부 사람들은 동물의 출산을 도와주거나, 구덩이나 물통에 빠진 동물을 도와주는 것조차 금하기도 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안식하신 날이었습니다. 6일간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하루의 쉬는 날을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하나님의 필요 때문에 생겨났을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다.
 
법을 이야기 할 때 법보다는 법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법을 집행하거나 적용할 때, 때로는 법을 개정할 때 법을 만든 취지를 생각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논쟁함에 있어 여러 이유들을 적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말씀으로 복잡한 논쟁의 핵심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해 정리하신 것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가복음 228)
 
 
 
2018년 부활절(41)을 앞두고 사순절을 지내며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순절 보다는 고난주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순절이라는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며 2018년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너무나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라 내 자신도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마가복음(단순하게 가장 짧다는 생각에 선택함)을 묵상하며 2018년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하루를 넘기고 이 글을 마무리하네요. 하루가 너무 짧다고 느끼는 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일까요?
 
 

2018년 2월 26일 월요일

미래를 생각한다면(마가복음 2장 18절~22절)

마가복음 218~ 22(쉬운성경)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는데,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1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느냐?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한, 그들은 금식하지 않는다.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고, 그 날에 금식을 하게 될 것이다.
 
21. 그 누구도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고, 깁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옷을 당겨 더욱 못 쓰게 될 것이다.
 
22. 또한 그 누구도 낡은 술 부대에 새 술을 보관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하면 술이 그 부대를 터뜨려, 술과 함께 술 부대가 다 못 쓰게 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사람들이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을 하였는데 왜 선생님(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냐고 묻자 예수님은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고, 그 날에 금식을 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고 깁지 않으며, 낡은 술 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금식은 속죄와 관련해서 많이 등장을 합니다.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였던 세례자 요한은 죄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갔고, 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마가복음 14,5)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양한 생각들을 했고, 자신의 입장과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다가와 물었습니다. 왜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본다면 친구들은 제자들이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죄인들을 만났고, 예수님과 함께 병든 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예수님께서 생명을 내어 주실 때가 있음을 말씀하시지만 이 말을 알아들은 제자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고, 그 날에 금식을 하게 될 것이다.”(마가복음 220)
 
새해가 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나 단체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무엇인가 새롭다는 것은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도 하지만 때때로 두려움과 망설임을 주기도 합니다. 과거의 삶을 변화해야 한다는 당위와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기도 합니다. 때때로 어설프게 변화를 꿈꾸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현실에 충실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고, 귀신들을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먹고 마셨습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에 오늘의 삶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2018년 부활절(41)을 앞두고 사순절을 지내며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순절 보다는 고난주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순절이라는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며 2018년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너무나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라 내 자신도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마가복음(단순하게 가장 짧다는 생각에 선택함)을 묵상하며 2018년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12일의 일정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부리나케 적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글을 정리하느라 오늘 조금 늦을 것 같네요. 에휴.
 
 

2018년 2월 25일 일요일

함께 하시는 예수님(마가복음 2장 13절~17절)

마가복음 213~ 17(쉬운성경)
 
13. 예수님께서 다시 호수로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14. 예수님께서 호숫가를 걸으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15. 예수님께서 레위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여러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16.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느냐?”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의로운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를 지나시다 또 다른 제자 레위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향하여 나를 따라오너라.” 말씀하시자 레위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레위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여러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마가는 그 이유를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마가복음 215)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느냐?”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의로운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
 
마가복음 1장에서 4명의 제자(시몬, 안드레, 야고보, 요한)를 부르신 곳도 갈릴리 호숫가였고, 레위를 부르신 곳도 갈릴리 호숫가였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어부와 세리였지만 예수님의 부름에 그들은 즉시 반응하였습니다.
 
세리를 바라보는 유대인들의 시각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배 계급에 편승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리를 부르셨고, 세리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다른 민족이나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바리새파 사람들 특히나 율법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직접 묻지 않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느냐?”(마가복음 216)
 
바리새파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 유대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면 민족적 감정을 건드리는 세리들과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으로 보더라도 그들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로운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마가복음 217)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14,15)
 
 
 
2018년 부활절(41)을 앞두고 사순절을 지내며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순절 보다는 고난주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순절이라는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며 2018년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너무나 갑자기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라 내 자신도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마가복음(단순하게 가장 짧다는 생각에 선택함)을 묵상하며 2018년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하루의 끝자락에 글을 마무리하고 게시합니다. 처음 마음과 달리 조금씩 무뎌지는 마음을 다잡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