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열린사회구로시민회(2020년 12월 29일)

안녕하세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이광흠입니다.
  
영국에서 변종 바이러스까지 넘어오고, 코로나 19 대응 단계는 2.5 단계고 정신이 없이 지나가는 2020년입니다.
  
이 험난한 시국에도 열린사회구로시민회는 회원들과 소통하고자 노력 중에 있습니다.
  
1. 11 25() 구로시민회 사무실에서 2020년 마지막 글쓰기 모임을 가졌습니다. 글감은 부모였습니다.
  
2. 11 26() 구로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구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 운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3. 11 26() 서울미술고등학교. 서라벌고등학교, 우신중학교 대책위 대표단과 조희연 교육감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4. 11 28() 이동진 역사강사의 안내로 덕수궁 역사 탐방을 진행하였습니다.
  
5. 11 30() 2020 글쓰기 씨앗기마을공동체 주민공모사업을 종료 하였습니다. 사무실에 2020 글쓰기 문집이 있습니다. 들리시면 한 권씩 가져가세요
  
6. 12 1() 열린사회구로시민회 34기 총회를 위한 1차 준비위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 총회는 2021 2 19() 저녁 7 30분에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7. 12 11() 서울구로지역자활센터 운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8. 12 12() 이석기 전 국회의원 특별사면 촉구 구로 정당시민사회 합동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https://youtu.be/HHPxrqJq4N8
  
9. 12 14() 구로지방자치시민연대 회의가 있었습니다.
  
10. 12 15() 열린사회구로시민회 34 2차 총회준비위원회가 줌(Zoom)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1. 12 19() 구로교육연대회의 정책팀 회의가 줌(Zoom)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2. 12 24()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줌(Zoom) 번개가 있었습니다.
  
13.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재정 사업 물품을 알려드립니다.
주문전화 010-8812-7428, 입금계좌 국민 837601-04-002483 열린사회구로시민회
13-1. 충북 보은 사과즙 1박스(50)
1박스(50) 21,500원 택배비 별도(3,500) 사무실에서 직접 가져가면 택배비 없음.
13-2. 전남 나주 배즙 1박스(50) 1박스(50) 25,000 (사무실에서 구입)
13-3. 1. 농도생협 1박스(20)
1박스(20) 27,000원 택배비 별도(3,500) 사무실에서 직접 가져가면 택배비 없음.
  
14. 회원들은 시민회 통장으로 CMS 출금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CMS 문의 열린사회 구로시민회(869-6164) 또는 이광흠(010-8812-7428)
14-1. 후원금 계좌 국민은행 : 837601-04-001569 열린사회 구로시민회
 

성탄절 선물

아내에게서 내복과 한 장의 카드를 성탄절 선물로 받았다.

2020년 12월 27일 일요일

구로청소년문화예술센터를 소개합니다(구로수다방 3회)

구로마을TV 구로수다방 3회 방송은 2020년 5월 7일(목) 구로청소년문화예술센터를 소개합니다를 방송. 구로청소년문화예술센터(이하 : 센터)가 구로에 자리 잡은 지 2년. 센터에서는 상주 동아리 모집,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진행,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 연습 공간으로 알려져 있어서, 센터를 주민 또는 학생들이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한 시간. 구로수다방 세 번째 방송도 문火공간에서 촬영을 했다. 한 동안 구로마을TV는 지역 단체들의 공간을 떠 돌았음. 구로마을TV 구독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구독~~ 제 작 구로마을TV 진 행 이광흠(깡통 |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출 연 김다빈(구로청소년문화예술센터), 김명주(구로청소년문화예술센터) 촬 영 서인식(구로마을TV) 송 출 김현주(구로시민센터) 배경음악 정동하 제작지원 문火공간, 편파TV, 가까이 협동조합, 유창수, 유군선, 오유섭, 정상훈, 김희영 장소협찬 문火공간

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줌(Zoom) 번개

안녕하세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이광흠입니다. 오늘은 성탄절 전 날입니다. 코로나 19 상황이지만,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지난 33기 총회에서 2020년에는 연말 모임을 가지겠다고 했는데,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수도권 지역에서는 5인 이상 모임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정에 없었지만 문득 친구들을 보고 싶거나 할 때 치던 번개를 줌(Zoom)으로 하려고 합니다. 줌으로 하는 번개는 오늘 그러니까 12월 24일(목)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진행하겠습니다. 줌 번개에 참여하려면 우선,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줌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사무국에서 크리스마스 핑계 삼아 회원들과 소통해보려는 실험이니까 줌 번개에 참여하셔도 되고 무시하셔도 됩니다. 줌 번개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오늘 오후 3시에서 5시 줌 번개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잠깐 들렸다 가시고, 참여 못하시는 분들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비록 코로나 19로 힘들어도 다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코로나 사태, 사회적 약자와 재난소득(구로수다방 2회)

구로마을TV 구로수다방 2회 방송은 4월 29일(수) 코로나 사태, 사회적 약자와 재난소득 이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우리 사회가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많았고, 재난소득에 대한 논의도 한창 일 때라 재난 소득과 관련한 이야기를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로수다방 두 번째 방송은 문火공간에서 촬영을 했다. 지금은 편파TV와 구로마을TV가 함께 스튜디오 11을 안정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한 동안 구로마을TV는 지역 단체들의 공간을 떠 돌았다. 아직도 구로마을TV 구독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구독~~ 제 작 구로마을TV 진 행 이광흠(깡통) 출 연 주수정(백공), 김요한(완구 아빠) 촬 영 서인식 송 출 김현주 배경음악 정동하 제작지원 유창수, 편파TV, 가까이 협동조합, 유군선, 문火공간, 오유섭 장소협찬 문火공간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문 열었어

저녁을 먹은 뒤 하람이와 잠시 EM(Effective Micro-organisms - 유용한 미생물들)을 가지러 송내2주민지원센터로 갔다. 하람이와 걸어가며 물었다. 나 : 하람 오늘 처음 밖에 나오는 거지? 하람 : 아니? 나 : 언제 나왔어? 하람 : 아까 문 열었어. 집 문을 열고 잠시 밖에 머리 내밀었던 것을 가지고 밖에 나왔다고 한다. ㅎㅎㅎ 코로나 19 빨리 정리되기를.... 사진은 지난 12월 13일(일) 눈 내린 산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에 대하여(구로수다방 1회)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이 2020년을 이야기하게 된다면 코로나 19와 관련한 이야기를 빼고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내 삶에 있어서 2020년은 코로나 19 처럼 구로마을TV와의 인연을 빼 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구로마을TV 구로수다방은 28회 진행되었는데, 27번 출연을 했다. 지난 2020년 4월 16일(목) 구로수다방 첫 회 방송이 있었다. 당시, 가까이 협동조합에서 진행을 했었는데, 4. 16 6주기였지만, 당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다는 말에 많은 학부모님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던 때라, 온라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로마을TV에서 실시간 방송을 잘 진행해보겠다는 비장하고, 가열찬 의지를 가지고 시작을 했지만, 역시나 소리가 울리는 등 첫 방송의 어지러움이 묻어나는 방송이다. 이 후 서인식 대표는 소리 잡느라 매 방송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장소도 그렇고, 마이크도 그렇고, 동네방송답게 빈 곳이 많았지만, 새로운 실험을 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온 나라가 정신이 없을 때 구로마을TV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을 시작도 못하느니, 실수하면 배운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게 2020년 구로마을TV는 실수하고, 부딪히면서, 재미있게, 즐기고, 배우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구로수다방 첫 방송 온라인 수업에 대하여? 혹여나 아직도 구로마을TV 구독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구독해주시기를~~ 제 작 구로마을TV 촬 영 김희영 진 행 이광흠(깡통), 김현주(무지개) 출 연 홍제남(홍쌤), 김정아(하니) 송 출 서인식 제작지원 가까이 협동조합, 금천IN, 구로FM, 유군선 장소협찬 가까이 협동조합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장하다 장해

시민회 2차 총회준비위원회 회의를 위해 사무실에서 2020년 평가서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하경이에게서 카톡으로 전화가 왔다. 하경 : 아빠, 전화가 안 돼. 그래서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 : (속으로) 통화가 무제한인데? 하경이와 통화를 마친 뒤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했다. 나 : 이게 무슨 일이래유? 상담직원 : 무제한이긴 한데, 비상식적인(일반적이지 않은) 통화 내용일 경우 막힙니다. 나 : 네? 그 기준은 무엇인가요? 상담직원 : 하루에 10시간 이상 통화가 3회 이상 일 경우 통화를 막습니다. 한 달 기준이기 때문에 1월에는 다시 풀립니다. 나 : 음. 지금 안 된다고 하는데, 이건 어찌 할까요? 상담직원 : 막힌 걸 푸시고, 추가 충전을 하시면 됩니다. 나 : 충전요? 상담직원 : 네. 나 : 그러면 일단 막힌 걸 풀어주시고, 15,000원 충전해주세요. 어떻게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3일이나 초과를 하지? 장하다 하경.

2020년 12월 14일 월요일

축하 축하

안녕하세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이광흠입니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다들 심난하시죠? 그래서 기쁜 소식 하나 전합니다. 우천학원(우신중고)이 2021년 1월 1일자로 권종현 선생님의 복직이 이뤄진다는 공문을 시교육청에 보냈답니다. 그동안 맘고생 많으셨던 권종현샘 축하드리며,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자

부자 깡통 언젠가 부자되세요라는 광고 멘트가 한 동안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모두가 부자가 되는 삶. 어떤 이들은 이 방송 멘트가 천박한 자본주의 모습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불편해 했고, 어떤 이들은 재미 삼아 또는 진심을 담아 덕담으로 사용하곤 했다. 부자 되세요. 사실 나는 부자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얼마가 있어야 부자라는 것일까? 그저 먹고 사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도대체 어느 정도 먹고 살아야 먹고 산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리 저리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져 버린다. 도대체 뭐지? 없는 삶은 무척이나 고되다. 이른 아침에 폐지를 주워 들고 가시는 어르신을 본다. 그 어르신은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누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노후를 생각한다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노후를 준비하고 있지? 사실 종교를 가진 탓에 큰 걱정은 없지만, 누군가 이리저리 따지고 들면 답이 없다고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도 걱정은 없다. 책임감도 없고, 대책도 없는 종교인의 답 없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너무 신뢰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을 주변에서 하지만, 걱정을 하는 내 자신이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인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정말 걱정이 안 된다. 아내가 걱정을 하면, 같이 걱정은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뭐 죽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이 먼저 드니 나도 걱정은 걱정이다. 사실 예전에는 돈을 번다는 생각을 거의 못했다. 그래서 아내는 나에게 가장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말, 결혼을 왜 했느냐는 말 등을 했다.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책임하기는 무책임 하다. 그런데 부자 된다는 말.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이 말에 대해서도 그리 큰 저항감이 없다. 부자면 부자인 것이지 뭐. 나는 나이가 더 들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돈 천원이라도 아끼려고 멀리 걸어 물건을 사러 나가는 내 자신과 가까운 편의점에서 너무나 쉽게 물건을 사는 아이들. 부모라서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원하는 만큼 남겨 줄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아이들은 제 삶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기에 큰 걱정은 없다. 가난하다는 거, 때로는 부유하다는 거, 내 삶에 있어서 그리 풍요로웠던 적은 없지만, 그리 가난한 적도 없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가난한 상황이 더 많았지만, 얼마나 더 가난해질 수 있는지 모르기에 큰 걱정도 없다. 가끔은 돈을 벌려고 해봤지만, 그래봐야 먹고 살 비용과 아이들 교육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내가 벌지 않으면 이 마저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아내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지만, 내게는 그 요구마저 때때로 부담이 된다. 정말 돈을 벌어야 하는 걸까? 백수의 피가 내게 흐르는 것 같다. 아니면 한량? 요즘은 그래도 구로시민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시간 날 때 용돈이 들어오는 일들을 하는 경우가 생겨서 먹고는 살고 있지만, 나이를 먹은 뒤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이긴 고민이다. ㅎㅎㅎ -----------------------------------------------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게시하고 있다. 나는 9개의 글을 적었다.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글 부모, 12월 4일 (금) 1번째 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12월 6일(일) 2번째 글 재테크, 12월 7일(월) 3번째 글 음식, 12월 9일(수) 술, 12월 11일(금) 웹 소설을 읽는 이유, 12월 12일(토) 코로나 19, 12월 23일(일) 시를 올렸으니 이 글이 마지막 글이다. 11월 11일(수) 글감은 부자 사진 1. 내가 열린사회구로시민회에서 교육팀장이라는 이름으로 첫 활동비를 받은 해인 2012년 추진했던 행사 중 하나. 사무실이 있는 궁동 지역 작은 도서관들과 공방을 탐방하던 모습. 2. 2015년 11월 14일(토) 백남기 어르신이 쓰러지시던 날 또 다른 사람이 물대포를 맞았다. 쓰러진 분을 도우려다 나도 물대포를 맞았다. 김상호님의 페이스북에 오른 동영상에서 찍은 사진. 나는 이 일로 누군가와 갈등이 폭발. 3. 2020년 11월 21일(토) 구로FM과 구로마을TV가 공개방송을 했다. 2020, 뜨거운 안녕. 이 글을 올리려고 내용을 정리하다가 2021년을 고민하던 마음을 정리했다. 재정적으로 조금 더 어렵겠지만, 마음 가는대로 살아가야겠다.

2020년 12월 13일 일요일

시 깡통 오늘은 시에 대한 글쓰기지만, 사실 시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내 주변에 시인도 없다. 아 예전에 시인이 있었다. 너무 많은 시집을 내는 시인. 그래서 시집이 나올 때마다 한권씩 주시던 분이 계셨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시집 중 하나라고 밝히곤 한다. 갑자기 시를 쓰기는 그렇고, 기형도 시인의 우리 동네 목사님(입 속의 검은 잎-P.129-130) 이라는 시를 옮겨 본다. 우리 동네 목사님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인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게시하고 있다. 나는 9개의 글을 적었다.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글 부모, 12월 4일 (금) 1번째 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12월 6일(일) 2번째 글 재테크, 12월 7일(월) 3번째 글 음식, 12월 9일(수) 술, 12월 11일(금) 웹 소설을 읽는 이유, 12월 12일(토) 코로나 19를 올렸으니 이 글 빼고 1개가 남는다. 10월 14일(수) 글감은 시. 사진 1. 2007년의 어느 날 현재는 사라진 예본교회에서 깡통과 하경. 2. 2020년 12월 13일(일) 눈 내린 산학교에서 하람과 눈사람. 3. 2020년 12월 13일(일) 하경, 하람 다니는 산학교 얼마 전 구로 민중의집 근처 식당에서 시집을 너무 많이 냈다는 시인의 글을 봤다. 이름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지금은 어찌 지내고 계실까? 못 뵌 지 15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성도가 십여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그래서 무척이나 궁핍했지만, 이 글을 올리려니 지금은 사라진 예본교회가 조금은 그립다.

2020년 12월 12일 토요일

코로나 19

코로나 19 깡통 코로나 19는 많은 것들을 변화 시키고 있고, 사람들은 코로나 19 이전과 이 후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 사실 내 개인적인 활동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구로시민회 활동에 있어서 대면 활동의 제약으로 온라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 유튜브나 줌 등을 통한 온라인 접촉에 대한 고민으로 모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회원들과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현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고, 발 빠른 곳은 온라인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이 해답일까? 구로시민회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조직이다. 그렇다고 하면 현 코로나 19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으로 소통한다고 고민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될 수 있을까? 구로시민회 상근자로서, 그리고 대표로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구로시민회는 왜 존재하는 가? 무엇을 하기 위한 조직인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나? 9월 운영위에서 줌(Zoom)을 통한 온라인 번개를 고민하고, 구로시민회 뉴스를 만들어 보면 어떠냐 물었고, 운영위원들은 한 번 해보자고 결정을 했다. 추석이 지나면 어설프지만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 어떤 결과가 있을까? 구로시민회 회원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회원들 안에서 정보의 차이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고민만 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뭔가 시도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 19는 내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네가 하는 일은 과연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학교 현장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본다. 코로나 19로 강의를 나갈 일이 많지 않지만 어쩌다 나가게 되면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마스크를 했기 때문에 표정이 무표정하게 보인다. 그런 학생들 앞에서 (초등학생) 온 몸으로 개그를 해본다. 그리고 웃는 아이들을 본다. 마스크로 표정을 잃은 학생들, 그리고 마스크를 하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개개인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물론 그 개개인의 삶에는 내 삶도 들어가 있다. 코로나 19는 내 삶을 어떻게 바꿔가고 있나? 시간이 지난 뒤 내 삶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게시하고 있다. 나는 9개의 글을 적었다.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글 부모, 12월 4일 (금) 1번째 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12월 6일(일) 2번째 글 재테크, 12월 7일(월) 3번째 글 음식, 12월 9일(수) 술, 12월 11일(금) 웹 소설을 읽는 이유를 올렸으니 이 글 빼고 2개가 남는다. 9월 23일(수) 글감은 코로나 19. 사진은 12월 11일(금) 고척동에 위치한 자전거풍경 사장님과 함께. 그나저나 코로나 19 대처 등급이 자꾸 높아지는데, 글을 쓴 지난 10월 이 후 벌써 2달이 지나도록 시민회는 줌 번개는 시작도 못했다. ㅎㅎㅎ

2020년 12월 11일 금요일

웹 소설을 읽는 이유

웹 소설을 읽는 이유 깡통 2015년 쯤 부터인가? 2014년부터인가? 인터넷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웹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네이버에서 웹툰을 보다가, 웹 소설로 범위가 확대 되었다. 웹소설은 복잡한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그래서 한 번 보면 다음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그런 내용의 소설을 읽고 싶어서 시작했다. 당시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 편하게 읽을 것을 찾았고, 그게 웹 소설이었다. 그러다가 시민회 활동을 그만두었던 2015년 11월 이 후 한 동안 새벽 2시~ 3시 까지 거의 매일 웹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아내는 내게 핸드폰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나는 핸드폰을 통해 웹 소설을 읽었는데, 한참 읽고 있던 웹 소설 작가가 다음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작가 따라 다음으로 넘어와 현재까지 다음에서 웹 소설을 읽고 있다. 그동안 네이버와 다음에서 읽은 웹 소설의 양을 종이책으로 친다고 하면 최소 백여 권 이상은 읽은 것 같다. 그렇다보니 웹 소설을 보느라 지불한 비용도 상당하다. 누군가 너는 무엇 때문에 웹 소설을 읽느냐고 내게 묻는 다면,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할 것이다. 생각 없이 읽다보면 웹 소설의 흐름(?)을 읽게 되는 건 그냥 덤. 웹 소설을 읽다보면 생각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뭔가를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해방된다. 내게 소설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처음에 어떤 것을 읽을지 고민은 하지만, 무엇인가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 하는 더러운 성질 때문에,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도 읽다가 끝가지 읽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읽는 웹 소설 대부분이 그저 그런 내용들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다보면 다 읽게 된다. 때때로, 처음에는 힘 있게 시작했던 것이, 후반으로 갈수록 개연성이 떨어지고, 실망을 시키는 글들도 있지만, 꾸준하게 자기 속도를 가지고 달려가는 작가들의 글도 보인다. 최근에 읽고 있는 한 작가의 글은 지난 2017년 시작한 글인데, 현재 4부를 준비하기 위해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연재하지 않고 있다. 작가는 매 번 하나의 스토리가 끝나면 준비하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시간을 두고 내용을 다듬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아마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그 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1천회가 넘는 글을 연재하는 작가들을 본다. 무엇인가 꾸준하게 한다는 것, 아마 내가 웹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부럽다는 거다. 꾸준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 사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게시하고 있다. 나는 9개의 글을 적었다.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글 부모, 12월 4일 (금) 1번째 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12월 6일(일) 2번째 글 재테크, 12월 7일(월) 3번째 글 음식, 12월 9일(수) 술을 올렸으니 이 글 빼고 3개가 남는다. 9월 2일(수) 글감은 소설이었다. 사진은 2020년 글쓰기 문집.

2020년 12월 9일 수요일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게시한다. 전부 9개의 글을 적었는데,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12월 4일 (금) 1번째, 12월 6일(일) 2번째, 12월 7일(월) 3번째 글을 올렸으니 이 글 빼고 4개가 남는다. 8월 19일(수) 글감은 술이었다. 사진은 9월의 어느 늦은 시간. 사진은 약간 흐리게 처리. 술 깡통 술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적어야 하는지 고민이다. 어릴 적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 기억의 오류가 있을 것 같지만, 할머니를 따라 다닐 때 소주를 주셔서 조금씩 마셨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 더 이상 기억이 없다. 중학교 때인가? 서울에 일하러 올라왔던 친구와 같이 소주 한 병을 둘이서 마셨던 것 같다. 술은 취하지 않았던 것 같고, 더 마셨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 있어서 더 적기는 뭐하다. 아버지는 술을 잘 못하신다. 조금 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시기 때문에, 술을 안 드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어머니도 술을 안 드신다. 사촌들이 술을 잘 마시는 걸 보면 아마 나도 마시면 제법 많이 마실 것 같기는 한데, 굳이 술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가끔 술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나는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한다. 때때로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술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을 듣기도 한다.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다. 그냥 그 자리가 좋아서 함께 하는 것이니까. 생각해보니 나는 술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물론 너무 많이 마셔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이들을 종종 만났었기 때문에, 술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에는 반대.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음식

음식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게시한다. 전부 9개의 글을 적었는데,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12월 4일(금) 1번째, 12월 6일(일) 2번째 글을 올렸으니 이 글 빼고 5개가 남는다. 7월 15일(수) 글감은 음식이었다. 군대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나 기타 등등 여러 노래가 있지만, 내가 군대에서 생활하던 1990년 나온 노래인 것 같아서 김민우의 입영열차안에서를 옮겼다. 음식 깡통 글감이 음식이라서 뭘 적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라면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남자들에게 군대에서의 기억은 늘 양가감정을 불러온다. 아마도 어릴 적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제는 구로시민회 운영위원회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 동안 남자 세 명이서 군번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91년에 제대를 했다. 그런데도 233으로 시작하는 군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살짝 당황스럽다. 그나저나 그 당황스러운 군대에서의 기억 중에서 라면과 얽힌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하나만 적어보려고 한다. 사실 군대에서 처음으로 라면을 먹었던 기억은 없다. 언제 처음 먹었더라? 아마도 선임 중 누군가가 라면을 끓여서 먹으면서 나도 끼워준 것 같지만 사실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패스. 상병 때 쯤 사단 체육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다른 부대로 파견을 나간 적이 있었다. 가만 일병 땐가? 어찌되었던 다른 부대로 운동 파견을 나갔다는 건 확실한데, 다른 부분은 기억이 흐릿해서 패스. 일단 자기 부대가 아닌 다른 부대에서의 생활은 편하다. 더군다나 운동 파견이었기 때문에 다른 파견 생활보다 더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어느 날 선임 한 명이 라면을 끓여먹고 싶다고 했다. 결국 선임 중 한 명이 파견 나온 부대의 동기를 통해서, 어찌 어찌 라면과 버너까지는 구했는데, 끓일 냄비를 구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라면은 먹고 싶었기만, 냄비를 구하지 못했기에, 창의적인(?) 방법을 떠 올렸다. 그것은 바로 세면실의 양은으로 된 세숫대야를 가져와서는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었다. 아마 맛있게 먹었을 것 같다. 음 지금 생각해보니 좀 그러네. 뒷이야기는 기억에 없다. 몇 명이서 그 라면을 먹었는지도 기억에 없지만, 그렇게 쭈구리고 앉아서 라면을 끓이면서, 그리고 그 끓인 라면을 먹으면서 좋아라 웃었던 기억은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군대에서 우스갯소리로 첫 휴가를 나갔는데, 부모님께서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고 물으니, TV에 나오는 라면을 모두 사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군대에서 먹는 라면은 뭔가 특별한 맛이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은 아니지만 술에 대한 기억도 하나, 군대에서 제대를 한 뒤 학교를 복학 한 덕분에 예비군 훈련을 편하게 받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원 훈련을 나간 적이 있었다. 다른 내무반은 분대장이 몇 있었지만, 우리 내무반은 분대장이 나 혼자라서 내가 내무반장을 했다. 문제는 훈련소를 담당하는 가장 높은 장교가 낮이고, 밤이고, 예비군들을 현역병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을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별을 달지 못하고 제대하는 스트레스? 예비군들의 반발이 많았고, 그 중간에 낀 소대장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느 날 야외 훈련을 나간 사이, 트럭들이 열을 맞춰 이동하는 하는 데, 트럭에 사람을 태우고 뒤에는 포를 달고 이동 중 앞에 가던 차가 약간 느리게 가고, 뒤에 차가 앞차를 앞질러 이동을 한 뒤, 뒤에 처진 차에 탄 사람이 빠르게 차에서 내려 가계에서 술을 사서는 앞에 가던 차와 교차하면서 다시 원래 자리를 바꿔 부대에 들어왔다. 다들 저녁에 술을 마실 생각에 기뻐하고 있었는데, 현역병이 장교들에게 예비군들이 술을 반입했다는 제보를 했고, 결국 술이 발견되면 즉시 퇴소시키겠다며 술을 찾느라 난리가 났고, 술을 반입한 우리 내무반은 고민에 빠졌다. 더군다나 나는 내무반장이다. ㅎㅎㅎ 마침, PX 병으로 근무를 했던 한 예비군이 주전자에다가 술을 모두 부어가지고서는 화장실에다 버린 후 주전자를 다시 제 자리에 가져다 놨고, 주전자에서 술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발견되었다. 술은 없고, 술 냄새가 나는 주전자는 발견이 되었다고 다시 난리가 났고, 현역병들과 장교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야단들이었다. 들리는 소리에 그 주전자는 교보재로 사용되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 뒷 이야기는 기억에 없다. 단지, 나는 중간에 난감해 하는 소대장을 다독이던 기억이 있다. 술이 음식은 아니지만, 저 너머 어딘가에 있던 기억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면 더 많은 재미있던 일들이 많겠지만, 굳이 그 이야기들까지 꺼내고 싶지는 않다. 군대는 그런 곳이다.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그런 기억들. 참, 우리는 예비군 훈련을 잘(?) 마치고 복귀 했고,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부대장은 이를 갈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쯤? 내가 동원 훈련 받았던 지역에서 예비군들이 집단 탈영(?) 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이것도 기억이 흐릿해서 패스. 그러고 보니, 구로시민회에서는 재정 사업으로 쌀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혹여 생협 쌀라면을 먹고 싶으신 분은 연락을 주시라.

2020년 12월 6일 일요일

재테크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올리려고 한다. 전부 9개의 글을 적었는데,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12월 4일(금) 1번째 글을 올렸으니 이 글 빼고 6개가 남는다. 7월 1일(수) 글감은 재테크였다. 첨부한 사진은 지난 2012년, 2014년 두 아이의 사진이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흘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재테크 깡통 재테크라고 하면, 가진 것을 잘 활용 또는 사용해서 현재 가진 것보다 양을 늘려나가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재테크를 할 상황인가? 갑자기 드는 생각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사실 조금의 여유가 있으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하겠지만, 현실은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그러하기에 어느 곳에 돈을 얼마나 넣어두면 좋다는 말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당장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가진 것을 잘 사용해서 미래를 준비하자는 말이 그리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돈이 없으니, 물론 아내는 나보다는 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내 돈은 아내 것이고, 내 돈은 내 돈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재테크는 시간과 몸 관리를 잘 하는 것뿐이다. 딸아이가 성장하면서 요구하는 용돈의 크기가 달라지고 있다. 사실 생활하면서 써야 할 곳이 많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알기에 요구하는 딸아이에게 가능하면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려하는데, 때때로 고민이 된다. 더군다나, 아내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기에, 수입을 현재보다 더 많이 늘려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청소년노동인권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오늘 이야기는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그 플랫폼 노동에 대해서 나도 끼어보려고, 한동안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던 사람으로서 당위와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별도의 수입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재테크가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투자해서 현재의 상황보다 더 낳은 미래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돈이 아닌 시간과 몸을 사용한 재테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면 현재보다 더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사실 현재 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계속 할 수 없을 것이기에, 시민회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최소한 누군가 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놓고 그만두고 싶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내가 현재 받고 있는 활동비보다) 더 많은 활동비가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회원들의 수가 필요하다. 시민회는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즉, 돈 나올 곳이 회원들 밖에 없고, 현재 내가 받는 활동비를 가지고는 누군가에게 와서 함께 일을 하자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만약 지금 당장 너는 그만 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네가 하는 일을 넘기라고 한다면, 또 다른 막막함이 있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노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노년이 되기 전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으면서 살아갈까? 재테크를 위해 나는 고민에 빠진다. 당장 뭘 얻으려는 것 보다는 현재의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에 잠긴다. 돈 되는 일을 따라 갈 수도 없고, 돈 따라 다닐 능력도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잘 다듬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에 고민을 가게 된다. 시간과 몸과 내가 가진 재정 상황을 직시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다.

2020년 12월 5일 토요일

독서토론모임 안내

안녕하세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이광흠입니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다들 마음이 답답하시죠?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알기에 이 힘든 시기를 다 함께 견디며 이겨 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들 아자... 아자... 힘을 내봅니다. 오늘은 열린사회구로시민회와 우신고등학교 역사동아리 시간탐험대가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안내를 하고자 연락들 드렸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건너 16~17년 촛불정국,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듯해 보였으나, 3년이 지난 현재 우리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문제는 여전히 물음표처럼 보입니다. 지금 국면에서 이러한 문제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열린사회구로시민회는 우신고등학교 역사동아리 시간탐험대와 함께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은 왜?>를 지역주민들과 함께 읽고 해방이후 특히, 70년대의 박정희시대의 문제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신청하시면 책을 선물로 증정합니다. 1. 신청기간 : 2020년 12월 5일 ~ 12월 11일(금) 2. 신청인원 : 코로나 19 상황으로 선착순 10명. 3. 신청방법 :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이광흠(010-8812-7428)에게 문자로 이름, 연락처, 참가 인원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4. 독서토론 모임 : 2021년 1월 18일~22일 중 하루. 단, 코로나 19 상황에 따라 모임 날자가 뒤로 미뤄질 수도 있습니다. 5. 시간 : 저녁 7시 경 6. 독서토론 장소 : 우신고등학교 교실(추후 공지) 7. 함께 읽을 책이 궁금하시다고요? 대한민국은 왜? 1945~2020, 김동춘 / 사계절 http://www.yes24.com/Product/Goods/93765194

2020년 12월 4일 금요일

변화하는 삶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2020년 글쓰기 시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 씩 올리려고 한다. 전부 9개의 글을 적었는데, 지난 12월 2일(수) 9번째 글을 올렸으니 이 글 빼고 7개가 남는다. 2020년 첫 글쓰기는 지난 6월 17일(수)이었고, 글감은 자유롭게 쓰기였다. 적었던 글과 관련한 영상을 찾아서 아래에 붙여봤다. 영상은 6월 17일(수) 북한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을 공개한 것을 YTN에서 뉴스 속보로 내 보낸 영상이다. 변화하는 삶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깡통 오늘은 2020년 첫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글감은 자유롭게 정해서 글을 쓰라는데, 무슨 글을 써야 하지? 지난 2019년 첫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이건 일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이런 고 민을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벌써 1년이 지나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오늘은 열린사회시민연합 총회 준비위원회가 강동송파시민회에서 있었다. 코로나19로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번 열린사회시민연합 총회를 대면이 아닌 서면총회로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내가 알던 모르던 꾸준하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늘 새롭게 변하는 상황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리고 2020년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한에 의해 폭파되었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 남북정상회담(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또는 4.27 정상회담)을 가진 뒤 2018년 6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2005년 개성공단에 설치되었다가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와 북한의 반발로 폐쇄된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옛 경제협력협의사무소) 사무실을 리모델링하기로 하고, 2018년 9월 14일, 개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2020년 1월 18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의 여파로 연락사무소 운영을 잠정 중단 했던 곳이 결국 폭파된 것이다. 처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곧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다시 분위기가 싸하다. 변화를 대하는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싶어서 조금은 생뚱맞은 이야기를 적어봤다. 나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잘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관습에 또는 누군가의 시선에 내 자신을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비록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폭파되었지만, 그래도 남과 북의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기에 희망을 품어본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변할 것이라 이야기를 한다. 변해야 함에도 변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기존의 틀을 고집하거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나는 벗어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나는 변화 앞에서 어떤 모습인가?

2020년 12월 2일 수요일

부모

열린글쓰기가 마무리되면서 밀린 서류 작업도 마무리 되었고, 내일 접수하면 끝. 글 쓰기 마무리 기념으로다 지난 11월 25일 글쓰기 모임 때 적었던 글(글감 부모)을 올려본다. 첨부한 사진은 하경이 돌 때 작은 처남이 사진을 찍었던 사진에서 오린 사진이다. 아마 맨 아래 내용을 읽을 때 장면일 것 같다. 또 다른 사진도 오린 것이라 화질이 많이 이상하다. ㅎㅎㅎ 부모 이번 글감은 부모다. 도대체 부모가 무엇일까? 내가 처음 부모가 된다고 했을 때 많은 고민이 있었다. 가장 큰 고민은 과연 나는 부모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었다. 당시 아내는 큰 수술을 마친 뒤였고, 교회는 미자립교회였고,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는 부족한 것들뿐이었다. 결혼 전에도 잠깐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막상 살다보니 잊고 있다가, 아내가 아픈 이 후 먼저 입양을 한 아내 친구의 권유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고민이 고민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지방회 목사님들과 여행을 갔었는데, 당시 전도사님 내외가 입양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전도사님 사모님과 밤새 죽이 맞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입양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당시 전도사님은 낳은 큰 아이가 있었다. 큰 아이와는 나이차이도 있었지만 우리보다 먼저 아이를 입양했고, 우리도 바로 뒤를 이어 입양을 했다. 입양을 결정한 뒤 나는 거의 매 일 한국입양홍보회 홈페이지에서 먼저 입양한 분들의 일기장을 읽으며 나는 과연 이런 상황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했었다. 내가 입양 후 초반 아니 지금까지도 입양과 관련한 글을 적는 것은 누군가 내가 입양에 대한 고민을 할 때부터 그들의 글을 통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혹여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입양과 관련한 글을 적고 있다. 나는 최근에는 입양이라는 주제로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입양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적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글을 적을 시간도 없고, 관심 분야도 바뀐 탓에 입양과 관련한 글을 적는 횟수가 자연스럽게 줄었지만, 입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는 형태로 계속해서 글을 적고 있다. 요즘은 사춘기에 빠진 큰 아이가 속을 뒤집는다. 어제는 하경이와 하람이 치과에 다녀왔는데, 치료비가 31만원이 나왔다. 하경 30, 하람 1. 치과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하경이는 무엇인가를 사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서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오늘 많다고 하니 31만원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자기에게 얼마가 들어갔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하람이가 옆에서 계산하는 것을 들은 것을 이야기 했다며, 자기에게 얼마가 들어갔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30이라 말을 하자, 그게 자기 잘못이냐고 도리어 따진다. 학교에 데려다 주는 동안 운전석 옆에 앉아 하경이가 화장을 고치며 짜증냈다. 하경이가 화가 난 건 아침에 화장을 한 것이 치료를 하느라 얼굴에 씌운 가림천 때문에 화장이 엉망이 된 것 때문에 화가 나 계속 짜증이다. 이가 아픈 것보다 화장이 중요하냐고 물으니 그럼 지금 현재 시간이 중요하지 어른들은 왜 맨날 미래를 이야기 하냐고 반문을 한다. 치아를 고친 것도 미래를 위한다고 하는데, 지금 자기에게는 치아보다 화장이 엉망이 된 것이 더 짜증이 난다며 화를 낸다. 이걸 에구.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미친 X 이라며 화를 내며, 다시는 치료를 하러 가지 말라며 화를 낸다. 지난 번 치료를 했을 때도, 자기 이는 자기가 잘 관리를 하겠다며 간섭하지 말라고, 짜증을 냈기 때문에, 이가 많이 썩었다는 말에 화가 난 거다. 하경이는 이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러고, 아내는 지가 아파봐야 안다고, 치료를 시키지 말라고 하고, 에휴, 다음 주 월요일에 하경, 하람 치과를 또 가야 하는데, 두 여자 사이에서 살아가기 참 힘들다. 하경이는 학교에서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 하경이가 연극 연습을 하느라 늦게 끝나기 때문에 저녁에 먹을 밥 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어제 늦게까지 잠을 못 자던 아내는 미친 X 이라며 하경이를 욕하면서도 새벽에 반찬을 만들고는 비몽사몽 출근을 했다. 사실 어제 저녁 아내가 하람이와 같이 자라며 방에 나를 밀어 넣었다. 그래서 하람이 옆에 누었는데, 하람이가 아빠 나이를 묻더니, 자기가 20살이 되면 아빠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우리 가족이 죽는 게 싫다며 운다. 뭐 사람이 살다가 죽을 수도 있지,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하람이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많이 두려운 것 같다. 애비가 목산데, 목사 노릇을 못한 것 같아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람이가 우리 가족이 죽는 것, 아빠, 엄마, 언니가 죽는 게 싫다며 우는 소리에 아내가 방으로 들어와 하람이 옆에 누워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는 코고는 소리와 함께 자기에는 방이 좁다는 이유로 거실로 팽당하고, 아내는 하람이와 계속 이야기를 한다. 하람이가 잠이든 사이 아내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고, 나는 쿨쿨. 부모란 무엇일까? 아침에 학교에 가는 하경이에게 엄마가 준비한 반찬이라며 말하고는 들려 보냈다. 지도 안단다. 미친 X 이라고 하면서도 잠도 못자며 딸 자식 반찬 만들어주는 아내나 가끔 편의점에 있으니 3천원만 카톡으로 보내달라는 딸에게 안된다고 하면서도 카톡으로 송금하는 내 자신을 본다. 부모 노릇 잘하고 있나? 하경이 돌 때 사람들 앞에서 읽었던 편지를 읽어보며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긴다. 처음 하경이와 함께 집에 돌아온 아빠는 하경이에게 하경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하경이가 부딪힐 수많은 편견과 오해의 장벽들을 모두 허물 수는 없지만 아빠의 능력이 닫는 데로 최대한 허물어 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이렇게 하경이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하경이와의 약속을 지키는 행위의 한 부분이라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