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8일 수요일

나의 고민

나의 걱정

이번 추석 연휴가 시작될 때 부모님이 계신 충북 보은으로 차를 몰았다. 전 날 늦게 잠이 든 아이들을 깨워서 7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건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차는 부모님이 사시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곳으로 갔다. 부모님께서 추석 명절을 앞두고 사과즙을 짜고 계셨기 때문이다. 15시가 돼서야 도착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와 집으로 가고, 나는 3시간 정도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시고 어머니가 오셔서 뒷마무리를 하시는 아버지만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새벽 아버지와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10월과 11월에 내려와 일을 할 수 없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농촌에서 일당 10만원은 받는다며, 많이는 못 주고 그 정도 줄 테니 내려와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신다.

사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9월부터 11월까지는 바쁘시기 때문에, 한창 바쁠 때는 동네에서 일할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나보고 내려와 함께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신다.

사실 전 날 어머니에게 시민회에서 월 75만원을 받는 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들으신 것 같다.

나이 스무 살에 나를 낳으신 동갑내기 부모님. 이제 일흔둘. 얼마나 더 일을 하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길어야 3~4년 이지 않을까?

아버지가 주식으로 가진 집까지 팔았고, 결국 고향으로 가고 싶으셨던 어머니와 달리 고향으로는 가기 싫으시다 며 선택한 곳이 지금의 보은이다. 보은에는 내게는 사촌누나가 살고 있다. 그 사촌누나의 아들이 사과농사를 하고 있는데, 그곳으로 가셔서 손자가 하던 공장에서 임대료를 내시고는 인근 농장에서 가져온 사과를 즙을 짜주는 일을 하시거나, 사과를 사셔서 즙을 짜 팔고 계신다.

그런데 사과즙 짜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사과콘티박스를 들고 나르고, 사과를 씻고, 잘게 부셔서 끓이고, 즙으로 만들어 포장하고, 나르는 일이 쉽지 않다. 일이 끝난 뒤 청소까지 마무리 하면 저녁이 된다. 이번에 가니 아버지가 허리에 보호대를 하고서 일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더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내가 보기에 길어야 3~4년 일을 더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농촌에 사시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약값이 만이 들기 때문에 적지 않은 생활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두 분께 필요한 만큼의 생활비를 보낼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보통은 나이가 50이 넘으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하건만 나는 내일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성장하는 만큼 돈을 쓰려고 하는데, 가진 것이 없다.

당장 먹고 사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몇 년 뒤 부모님 생활비를 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못하는 게 걱정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가진 것도 없고, 재주도 없다. 그런데 내 나이 벌써 52.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시골 목회 자리라도 있느냐고 물으신다.

내 나이 때 아버지는 무엇을 하셨을까? 32. 30 결혼하지 않은 두 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래서 더더욱 아버지는 주식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자식들을 먹여 살려 보려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까?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어디 유치원 차라도 운전을 해야 하나?

목회를 할 수 없어서 선택한 곳이 열린사회구로시민회였고, 갈등이 싫어 선택한 것이 계단청소였으나, 돈 보다는 이상을 따라 다시 선택한 것이 열린사회구로시민회였다. 하지만 열린사회구로시민회 상근 활동도 오래 못할 것 같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가야 할까? 알 수 없다. 정말. 그러니 현재 삶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지난 2019년 9월 17일 열린사회구로시민회 글쓰기 모임의 글감 ‘나의 고민’ 또는 ‘페미니즘’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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